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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진 =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MBN 방송화면 캡처
[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한국노총 강모 부위원장이 산하 노조였던 전국건설산업노조(건설노조)로부터 수억원대 돈을 받아, 이 중 일부를 한노총의 또 다른 핵심 간부에게 나눠 주려 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건설노조는 지난해 7월, 위원장의 10억원대 횡령·배임 사건이 터지면서 한노총에서 제명됐다. 건설노조 핵심 관계자는 “제명 이후 우리 노조 간부가 당시 한노총 수석부위원장이던 강씨에게 우리 노조의 한노총 복귀를 부탁했고, 강씨가 1.5억~3억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의 불투명한 회계, 부당한 금품 거래 등이 속속 드러나는 와중에 한국노총 내부에서 뇌물성 돈이 오갔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노동계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매체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작년 9월 18일 강씨는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에서 한국노총 동료 핵심 간부 A씨를 만나 “(건설노조가) ‘이거는 인사차 그냥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거를 주겠다는 거야”라며, “그러니까 그거는 내가 받는 거니까 (넌 나눠 받아도)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 말을 하며 A씨에게 현금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서류 봉투를 건넸는데 A씨가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에 따르면, 강씨는 이보다 앞선 작년 9월 1일 인천의 한 골프장에서 A씨와 골프를 하다 A씨에게 ‘건설노조에서 3억원을 준다는데, 너 1억원, 나 1억원 갖고, 나머지 1억원은 (2023년 1월 예정) 총연맹 위원장 선거에 쓰자. (돈이) 깨끗하니까 괜찮다’는 취지로 현금 수수를 제안했다.
A씨는 당시 ‘그 돈 받으면 죽는다’며 제안을 거절했지만 강씨는 일주일쯤 뒤 다시 A씨를 찾아 ‘건설노조에서 선수금으로 1억원이 왔으니 너 5000만원, 나 5000만원씩 쓰자’고 재차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가 이를 다시 거절하자 행주산성으로 불러내 현금 봉투를 주려 했다는 것이다.
강씨는 한노총 산하 전국택시노동조합 위원장(3선)을 거쳐, 2020년 김동명 한노총 위원장 집행부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한노총 핵심이다. 지난달 28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수석부위원장직은 내려놔 지금은 일반 부위원장이다.
녹취록에는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이었던 강씨가 또 다른 핵심 간부인 A씨에게 돈을 주려고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온다. 지난해 9월 초 강씨는 A씨에게 ‘건설노조(한국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조)가 돈을 준다고 하니 받아라’라고 두 차례 제안했지만 A씨가 받아들이지 않자 일요일인 9월 18일 행주산성으로 A씨를 불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행주산성 인근 식당 주차장에서 A씨를 만난 강씨는 차에서 돈이 든 것으로 보이는 서류 봉투를 꺼냈다. 이를 본 A씨가 “아, 형. 아이, 형, 그거 하지 마. 진짜로. 아이, 형. 그거 아니지”라고 만류하자, 강씨는 “이거(봉투) 조금 있다가 꺼낼게. 알았어, 알았어”라고 했다.
A씨가 “일단 넣어. 형. 아, 형, 왜 그래?”라고 하자, 강씨는 “아, 그러니까 이거 저거라니까 왜 그래?”라고 했다. 그전에 제안했던 ‘건설노조에서 준 돈’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식당으로 들어간 후에도 강씨는 “(건설노조에) ‘그럼 어떻게 할래?’ 그랬어. (그랬더니 건설노조가) 이거를 주겠대”라고 하는 등 A씨에게 계속 ‘돈을 받아가라’는 취지로 말을 이어갔다.
건설노조는 그보다 두 달 전인 지난해 7월 진병준 위원장이 조합비를 포함해 10억원대 횡령·배임 사건을 저질러 한노총에서 제명된 상태였다. 건설노조는 한국노총에 복귀해 건설 현장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는 게 시급한 과제였다.
녹취록에는 A씨가 “아, 하지 마. 하지 말고”라고 거절하자, 강씨는 “아니, 하지 마가 아니고” “너 이름도 없는데, 임마”라고 했고, A씨가 “형, 내가 그걸 왜 받아? 받을 이유가 없잖아, 내가”라고 하자, 강씨가 “받아서 내가 주는 건데 뭘 그래? 내가 받아서 (주는 건데)”라고 하는 대목도 나온다. A씨는 끝내 봉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건설노조는 한국노총에서 제명되는 바람에 당시 건설 현장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밀려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양대 노총 건설노조는 공사 현장에서 ‘우리 조합원을 쓰라’며 업체를 압박해 일자리를 확보했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아내며 세를 불려왔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당시 한국노총에서 제명당하자 업체들이 ‘당신들은 이제 더 이상 양대 노총도 아니지 않으냐’며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당시 건설노조 일부 조합원들은 힘을 잃은 건설노조를 탈퇴하고 한국노총에 개별적으로 가입하거나, 한국노총 직할 ‘연대노조(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에 가입하는 등 한국노총 간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연대노조는 2020년 10월 한국노총이 출범시킨 전국 단위 일반 노조로, 특정 기업 소속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한국노총 본부에 가입하거나, 연대노조에 가입하면 한국노총 마크를 달 수 있어 건설 현장 출입이 다시 용이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녹취록에는 강씨가 A씨에게 “(직접 가입 문제를) 안 하면 안 돼, 지금”이라고 하는 대목도 있다. 위기에 처한 건설노조 간부가 강씨에게 강력하게 한국노총 복귀 청탁을 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한국노총이 건설노조의 이런 요청을 일부 수용하려 했던 정황도 보인다.
한국노총은 작년 10월 건설노조 일부 조합원들을 한국노총 소속으로 직접 가입시키는 안을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올리려 했으나 위원들이 ‘제명하자마자 이러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거세게 반발, 안건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지난달 13일 열린 전체회의에서는 집행부 핵심 인사가 ‘건설노조 일부 조합원들의 연대노조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건설노조를 제명하는 과정을 외부에 공개하며 비리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에 빗대는 등 비판 수위를 높이자 다시 건설노조를 감싸고 있다.
강씨는 해당 의혹과 관련한 이 매체의 확인 요청에 처음엔 “그런 적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30분쯤 뒤 다시 전화를 걸어와 “(건설노조에서) 제안을 받고, 관련 대화를 A씨와 한 건 맞다”면서 “봉투를 건네며 ‘돈이다 가져라’라고 말은 했지만, 봉투 안에는 돈이 없었고,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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