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빛보다 빠른 스피드, 물체 투과, 전기 방출, 자체 회복, 천재적인 두뇌까지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존재감은 제로에 가까운 ‘플래시’ 배리 앨런(에즈라 밀러). ‘저스티스 리그’에서 궂은일만 도맡는다고 투덜대는 히어로다. 어느 날 자신에게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시공간 이동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브루스 웨인(벤 애플렉)의 만류를 무시한 채 끔찍한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역행한다. 의도치 않은 장소에 불시착한 앨런은 멀티버스 세상 속 또 다른 자신과 맞닥뜨리고 메타 휴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뒤엉킨 세상과 마주한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솔로무비 ‘플래시’는 흥미로운 멀티버스 스토리에 초광속 질주액션의 쾌감을 담아낸 작품이다. ‘맨 오브 스틸’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 기존의 DC 솔로무비가 히어로의 파워에 집중했다면, ‘플래시’는 스피디한 액션에 방점을 두면서도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품고 있다. 극초반부 플래시가 배트맨, 원더우먼(갤 가돗)와 힘을 합쳐 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하는 모습은 ‘미니 저스티스 리그’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후반부에 이르러 더 많은 DC 히어로로 확장된다. DC팬이라면 환호성을 지를만한 추억의 히어로들이 향수 가득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마’와 ‘그것’ 시리즈로 실력을 인정받은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은 미국 대중문화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영화의 외연을 넓힌다. 시간여행의 고전 반열에 오른 ‘백투더퓨처’ 속 시간의 딜레마를 끌어오고 번개를 이용한 특정 장면에선 오마주를 하는가 하면, 조지 리브스의 ‘슈퍼맨’과 추진됐다가 무산된 팀 버튼의 ‘슈퍼맨 리브스’까지 불러내 극적인 재미에 가속도를 붙인다. 무엇보다 원조 ‘배트맨’ 마이클 키튼이 망토를 휘날리며 비행하는 모습은 올드팬의 감성을 자극하며 짜릿한 쾌감마저 안긴다. 그는 플래시를 돕는 조력자 뿐만 아니라 인생의 경륜을 들려주는 어른의 역할까지 제대로 소화했다.
각종 기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생활에 괄호를 치고 본다면, 에즈라 밀러의 연기는 눈부실 정도다. 그는 현실의 앨런(알파)과 멀티버스 속 앨런(베타) 1인 2역을 뻬어나게 소화했다. 후자가 이제 막 초능력을 얻어 기쁨에 들뜬 천진난만한 캐릭터라면, 후자는 어리석은 자아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응시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한층 성장하는 인물이다. 알파와 베타는 서로 티격태격하다가도 위기의 순간에 힘을 합치는데,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웃음을 터뜨린다. 재치가 넘치는 유쾌한 버디무비의 재미가 쏠쏠하다. 원형극장의 무대를 연상시키는 멀티버스 시공간의 시각적 구현도 인상적이다.
DC 스튜디오 CEO에 오른 제임스 건 감독을 비롯해 톰 크루즈,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플래시'의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70%에 불과하다. 슈퍼히어로무비에선 빌런이 중요한데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의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부족해 보인다. 슈퍼걸(사샤 칼레)의 난데없는 등장과 갑작스러운 퇴장도 의아하게 느껴질수 있다(제임스 건의 새로운 DC 유니버스에서 슈퍼걸이 다시 등장할지도 미지수다). 이러한 아쉬움을 접어둔다면 슈퍼히어로 장르를 좋아하는, 특히 DC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플래시’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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