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국가대표를 일찍 그만둔 선수들이 적지 않다. 더 이상 국가대표를 원치 않는 데는 부상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대표 조기 은퇴’를 선언하고도 몇 년씩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대표로 뛸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있거나 선수 생활이 싫다면 프로 선수는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선수 생활도 그만두어야 앞뒤가 맞다. 대표 팀에서 뛰는 것이 소속 팀에서 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왜 그들은 국가대표를 멀리하는가?
올 1월 미국농구협회는 파리 올림픽 여자 대표 후보 18명을 1차 선발했다. 그 가운데 다이애나 토라지가 있었다.
42세.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프로 19년.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슈팅 가드로 꼽힌다. 5개의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3번 우승. WNBA 10번의 올스타에 사상 최초 1만점 돌파. 2023년 시즌에도 평균 27분을 뛰면서 평균 16점, 4.6 도움, 3.6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과 체력을 과시했다. 그러니 1차 선발에 든 것이다.
토라지가 5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20년 동안 대표 팀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04년 아테네 때 함께 뛰었던 돈 스탤리는 2021년 도쿄 올림픽 감독으로 토라지를 지휘했다. 베이징 등 3번의 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했던 세이모네 아우구스투스는 파리 올림픽 선발위원회 위원으로 토라지를 뽑았다. 5개 금메달의 동료였던 수 버드는 은퇴했다.
그러나 토라지는 굳건한 현역이다. 이번에도 스무 살이나 어린 선수들과 함께 당당하게 후보에 올랐다. 여섯 번째 금메달 도전이다. ‘국가대표 조기 은퇴.’ 그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른 유명 선수들도 마찬가지.
스탤리는 34세에 세 번째 금메달을 딴 뒤 다음 해 은퇴했다. 버드는 4번의 WNBA 우승, 13번의 올스타 선정, 5번의 유로리그 우승 등 사상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꼽혔다. 41세 때는 도쿄 올림픽 선수단 기수였다. 다섯 번째 금메달을 딴 뒤 다음해 18년의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미국 여자축구대표 주장 메건 러피노도 38세 때인 지난해 호주 월드컵 두 달 뒤 국가대표도 프로선수도 은퇴했다.
아무리 최고 선수라도 이름값만으로 대표선수가 될 수 없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될 수도 없다. 이들 모두 대표로 뽑힐 실력과 체력이 있는 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대표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접으니까 대표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 농구인은 “만약 젊은 선수들이 더 나은 실력을 보여준다면 그녀는 결코 ‘봐 주기’ 선발 특혜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토라지의 자존심을 언급했다. 그녀는 과거의 명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실력이 안 되면 대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런 토라지도 수차례 심각한 부상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쉬기도 했다. 2019년 허리 수술, 2021년 가슴뼈 골절, 2023년 발가락 부상. 그럼에도 그녀가 여전히 대표 선수가 되길 원하는 것은 경쟁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나는 경쟁심이 강하다. 경쟁을 사랑한다. 여전히 날마다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을 사랑한다. 올림픽 캠프에 갈 때마다 엄청난 기운과 아드레날린을 받는다. 휴대폰에는 파리 올림픽 날짜가 세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지면 조국을 대표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내가 은퇴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다섯 개나 딴 그녀의 연봉은 3억 원 가량. 한국 여자농구 최고 연봉의 70% 수준. 여자배구 최고 연봉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두 종목 모두 한국은 메달은커녕 올림픽 참가조차 버겁다.
이제 토라지에게 메달을 추가하고 기록을 깨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메달은 멋있는 것이다. 그러나 메달보다 훨씬 나은 것이 아름다운 기억”이라 했다. 그녀는 대학 때부터 환상의 짝이었던 수 버드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기억을 파리에서 만들고 싶을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승무원이 버드에게 “기장이 금메달을 볼 수 있냐고 한다”며 가능한지 물었다. 금메달은 바로 기장에게 가지 않았다. 버드는 메달을 승객에게 먼저 건넸다. 메달이 복도를 따라 돌려지면서 모든 승객들이 만져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겐 금메달보다 훨씬 소중한 올림픽 추억. 국가대표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국가대표라는 것은 나에게 강한 자극을 주었다. 41세 때까지 가슴에 ‘미국’을 품고 다섯 번의 올림픽과 다섯 번의 월드컵에 나가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고 정말 특별했다. 그 어떤 순간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국가대표 선수’의 의미를 짚었다.
미국농구협회는 여자와 함께 남자 올림픽 후보 선수 41명도 뽑았다. 이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13명이나 포함됐다. 케빈 듀란 3개.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폴 2개.
39세 제임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대표 팀에서 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테픈 커리, 듀란 등 여러 선수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가를 권유할 정도로 대표 합류에 적극적이었다. 35세 듀란은 “올림픽에 뛸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네 번째 금메달을 노리는 그는 파리가 ‘마지막 춤’이 될 것이라며 참가를 결정했다.
역사상 최고 3점 슈터라는 36세 커리는 아직 올림픽은 뛰지 않았다. 그러나 “무조건 파리에 가기를 원한다”고 강한 열망을 보였다.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은 이들도 국가대표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배구의 한선수는 38세인 지난해 국가대표로 뛰었다. 38세 강영미는 펜싱 현역 대표. 그런데 여러 종목에서 한창 뛸 나이의 선수들이 대표는 일찍 그만두면서 선수 생활은 계속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뛸 수 있는 실력과 체력이 있는 한 언제든 어디에서든 뛰는 것이 선수의 기본. 무슨 이유로 ‘국가대표 조기 은퇴’를 하는지 묻고 싶다.
금메달 5개의 마흔 두 살 토라지는 수차례 큰 부상을 겪고도 여섯 번째 올림픽을 꿈꾼다. 여전히 국가대표로 경쟁하는 것을 사랑하는 그녀의 열정을 보라.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손태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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