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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후쿠오카(일본) 박승환 기자] "나를 롤 모델로 꼽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갈 줄이야"
지난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現 키움)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한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뛰는 동안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한결같이 꼽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간판타자' 야나기타 유키였다. 이정후는 어릴 때부터 '전설' 스즈키 이치로를 동경해 51번의 등번호를 선택했지만, 야구 플레이에 대해서는 이치로보다 야나기타를 더 많이 참고했다.
특히 상대 투수가 어떤 볼을 던져도 '풀스윙'을 가져가는 것은 이정후와 야나기타의 공통점. 야나기타는 일본에서도 '미스터 풀스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언제나 자신만의 스윙을 가져간다. 어쩔 때는 헬멧이 벗겨질 때도, 하체의 밸런스가 무너질 때도 있지만, 야나기타는 한결같은 모습. 오 사다하루(왕정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야나기타가 입단했을 때, 타격 폼에 대해서는 '절대 건들지 말라'고 한 것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이는 야나기타를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야나기타의 커리어는 화려하다. 야나기타는 2010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소프트뱅크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2011년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는데, 당시 6경기에서 야나기타는 단 한 개의 안타도 터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도 68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0.246 OPS 0.685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런 야나기타의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2013시즌이었다. 야나기타는 104경기에서 88안타 11홈런 타율 0.295 OPS 0.860으로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2015년 '정점'을 찍었다. 직전 시즌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던 야나기타는 2015시즌 138경기에서 182안타 34홈런 99타점 32도루 타율 0.363 OPS 1.100으로 폭주, 그해 타격왕과 출루율 타이틀은 모두 야나기타의 것이었다. 그리고 3할-30홈런-30타점으로 '트리플스리'를 달성하며, 소프트뱅크는 물론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거듭났다. 이를 바탕으로 야나기타는 본격 전성기의 길을 걷기 시작,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야나기타는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보다, 소프트뱅크의 '원클럽맨'으로 남는 것을 택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통산 13시즌 동안 1398경기에 출전해 1542안타 260홈런 855타점 159도루 타율 0.313 OPS 0.949로 엄청난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방망이' 능력만 놓고 보면, 현재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2024시즌 연봉 또한 5억 7000만엔(약 51억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특급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야나기타를 이정후는 늘 '롤 모델'로 꼽아왔는데, 이정후는 야나기타와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됐다. KBO리그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해 겨울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것. 이정후는 2023-2024년 메이저리그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 주목할 만한 선수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얻게 됐고, 빅리그 절반 이상의 구단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좌타자 외야수가 필요한 대부분의 구단이 이정후를 주목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당초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이정후의 예상 계약 규모로 5000만 달러(약 668억원) 수준을 전망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본 뒤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비롯해 뉴욕 메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복수 구단이 이정후의 영입 여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결과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510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 계약이 성사된 이후 미국에서는 '오버페이', 샌프란시스코의 '패닉바이'라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현시점에서 이정후의 계약 규모를 납득하는 모양새다.
이정후는 가벼운 옆구리 부상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데뷔전이 조금 지연됐지만,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맞대결에서 3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3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는 데뷔 첫 홈런과 함께 2루타를 터뜨리며 폭주했다. 그리고 지난 2일 '디펜딩 챔피언'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도 안타를 기록, 세 경기 연속 안타로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표본이 많지 않지만, 시범경기 성적은 4안타 타율 0.444 OPS 1.333을 기록하고 있다.
3일 일본 후쿠오카현의 후쿠오카 PayPay돔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스페셜 매치가 끝난 뒤 한국 취재진과 만난 야나기타는 인터뷰를 한창 이어가던 중 이정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야나기타는 지난해 6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의 소프트뱅크 시구에 앞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정후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간다면 TV로 경기를 보면서 열심히 응원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진출 과정과 시범경기에서 행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눈치였다.
야나기타는 이정후에 대한 질문을 받음과 동시에 "정말 대단한 계약을 맺지 않았나요?"라고 반문하며 활짝 웃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는 '리드오프'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정후는 얼굴도 잘 생겼고, 리드오프로서 플레이 스타일도 너무 좋더라. 그래서 응원을 하고 있다. 이정후가 나를 롤 모델로 선택해 준 것에 대해서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야나기타는 자신을 롤 모델로 꼽았던 선수가 이제는 어엿한 빅리거로 성장한 것을 특히 기뻐했다. 야나기타는 "나를 롤 모델로 선택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갈 줄이야. 정말 기쁘다"면서도 "결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은 이정후가 자신의 힘으로 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야나기타는 "한국과 메이저리그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팬으로서 이정후를 더 응원하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두산과 스페셜 매치에 출격한 야나기타는 두산의 '토종 에이스' 곽빈과 두 차례 맞대결에서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실전 감각을 다졌다. 그는 "오늘 이승엽 감독님을 보게 됐는데, 아마추어 시절부터 정말 응원을 했었다. 그래서 너무 기뻤다. 특히 선발 투수(곽빈)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직구는 빠르고, 커브의 각도도 너무 좋더라. 아직 젊은 투수라 들었는데, 점점 좋은 투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역시 양의지 선수다. 오늘도 홈런을 치지 않았나. 올림픽에서도 봤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후쿠오카(일본)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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