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결' 송하윤 "수민이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수민이요? 계속 길게 품었던 캐릭터라 한 번에 끊어지지 않아요. 꾹꾹 눌러 담을 거예요. 다음 캐릭터를 연기할 때 수민이는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그래서 잘 눌러주고 있어요. 수민이를 연기하면서 나름 저를 잘 속여가면서 찍었거든요. 나는 행복하다, 힘들지 않다, 계속 주문을 외우면서."

송하윤은 최근 서울 강남구 킹콩 by 스타쉽 사옥에서 마이데일리와 만나 케이블채널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극본 신유담 연출 박원국 한진선) 종영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가 10년 전으로 회귀해 인생 2회 차를 살며 시궁창 같은 운명을 돌려주는 '본격 운명 개척' 드라마.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시리즈를 연출한 박원국 감독과 '낮과 밤' 신유담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배우 박민영의 1년 2개월 여만 복귀작이기도 하다.

송하윤은 극 중 강지원(박민영)의 하나뿐인 절친이지만 남편인 박민환(이이경)과 불륜을 저지르는 빌런 정수민을 연기했다. 정수민은 순해 보이는 겉모습과 정반대인 비틀어진 내면의 소유자. 송하윤은 연약한 미소 아래 헤아릴 수 없는 욕심을 품은 정수민의 이면을 리얼하게 묘사해 호평받았다.

이날 송하윤은 "개인적으로 연기하면서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고 잘할 수 있는데 선택을 받아야하는 입장이다. 그런 부분들이 답답했고 내 얼굴과 목소리를 벗어나고 싶은데 기회가 많지 않았다. 유난히 그런 생각이 커졌을 시기였다"며 "악역을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수민이를 만났다. 수민이 자체가 정말 배우한테 천운 같은 캐릭터다. 슬프고 귀엽고 나쁘고 똘끼 있는 것까지 해볼 수 있는 연기가 너무 많았다"고 배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2004년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송하윤은 이듬해 MBC '태릉선수촌'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MBC '내 딸, 금사월'에서 주오월 역을 맡으며 처음 주목받았고 KBS 2TV '쌈, 마이웨이'에서 백설희 역을 맡아 또 한 번 인기를 끌었다. 자연히 밝고 귀엽고, 착하고 순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었다. 2017년 SBS '언니가 살아있다'에서 특별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본격적인 악역 연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착한 역이 더 편하고, 악역은 확실히 않은 작업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다 하고 싶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악역은 송하윤이 사라져야지만 송하윤이 살 수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참 많이 비웠어요. 평상시에도 스트레스나 압박감 이런 감정들이 생기는 것들을 풀지 않고 계속 더 눌렀어요. 이게 결국 수민이한테 좋은 거니까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노력과 연기내공으로 송하윤은 극과 극의 감정을 유연하게 오갔다. 맑은 눈망울로 생글생글 웃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비릿한 미소와 섬뜩한 눈빛을 드러냈다. 미세하게 떨리는 동공, 눈썹, 입꼬리로 정수민이 느끼는 복합적인 심리를 오롯이 전달했다. 특히 15회에서 박민환과 오유라(보아)의 불륜을 목격한 뒤 "와 씨"라고 분노에 떠는 연기는 많은 이들의 극찬을 받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들썩였음은 물론이다.

송하윤은 "나는 (그런 반응을) 몰랐다. 지인들에게 '와 씨'가 난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 알았다. 그걸 보고 '아, 내가 이렇게 했구나'라고 알았다. 나도 지금 수민이를 구경 중이고, 개인적으로 송하윤을 구경 중"이라며 "스스로 그렇게 돌아버린, 화가 나고 질투하는 얼굴을 목격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처음 보니까 나도 너무 낯설고 연기할수록 인상과 느낌이 바뀌더라. 그런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쁘게 얼굴이 바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에는 오른쪽 얼굴을 많이 썼어요. 왼쪽이 선하고 오른쪽이 날카롭거든요. 불균형한 얼굴을 많이 이용하면서 찍었어요. 못되고 싶을 때는 오른쪽으로, 선하거나 잘 보이고 싶을 때는 왼쪽 얼굴로요. 감독님은 처음엔 모르셨어요. 제가 이런 부분을 갖고 있다 말씀을 드렸어요. 보통은 예쁘고 선한 얼굴을 찍잖아요. 이번에는 그런 거 없이 다양하게 찍었어요."

정수민에는 송하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프로파일러와 정신과 의사를 직접 만나 강의를 듣고 조언을 구했다. 시청자의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정수민을 세단락으로 분리시킨 뒤 비주얼로 표현했다. 초반에는 철딱서니 없는 가벼운 느낌을 주려 커다란 액세서리와 핑크색 의상을 착용했다. 중반부 캠핑 즈음, 강지원에 대한 감정에 변화가 생기자 여전히 파스텔톤이지만 살짝 톤다운된 파스텔과 네이비를 사용했다. 완전히 '흑화'된 이후에는 검은색 위주의 의상과 쌩얼 같은 메이크업이 주를 이뤘다.

송하윤은 "원래는 세세하게 계획하는 편은 아니다. 수민이를 할 때 유난히 신경을 썼다. 감정이 너무 복잡해서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정리가 필요했다. 16회라 호흡이 너무 길어서 하나로 쭉 가져가기에는 단순한 부분이 있었다"며 "캐릭터에 재미를 주려면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점점 몰입의 강도를 높여가고 싶다. 또 심리적으로도 기분이 좋을 때는 밝은 옷을 입고, 안 좋을 때는 어두운 옷을 입는다고 하더라. 그런 부분을 캐릭터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하나 할 때마다 배우들은 갈림길에 선다. 캐릭터를 털어내고 빨리 빠져나오거나, 그 여운에 잠기기를 선택해야 한다. 송하윤은 계속해서 품고 다음 작품과 캐릭터에 보태 쓰는 것을 택하는 편이다. 한번 그 인생을 살고 감정을 맛봤기에. 당연히 정수민 또한 오래오래 품고 있을 생각이다. 이전 주오월을, 백설희를 연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정수민은 지금의 정수민이 아닐테다. 그렇게 송하윤은 결과와 상관없이 배우를 하며 차곡차곡 잘 쌓아가는 중이다.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정수민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에 수민이를 하기 전에 권태 같은 게 왔다고 했었는데, 그냥 제가 내려놓지 못했던 권태 같아요. 수민이를 연기하면서 전혀 신경 안 쓰고 마음 놓고 막 지르고 표정이고 뭐고 막 지르고 다 썼어요. 그러면서 많은 것들이 극복됐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액션'하고 '컷' 하는 그 소리가 저는 여전히 너무 행복해요. '액션'하면 다른 세상이 열리고 '컷' 하면 다시 제 세상으로 돌아와요.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그냥 너무 좋아요. 그 좋은 것만, 연기하는 것만 쫓고 싶어요."

인터뷰의 끝무렵, 송하윤은 울컥 눈물을 보였다. 정수민을 아껴준 시청자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을 때였다. 지난 한 해 정수민을 연기하며 송하윤은 미치게 외로웠다. 과거의 캐릭터에 발목 잡히는 느낌에 인스타그램 사진까지 모두 지웠다. 그렇지만 또 주오월이, 백설희가, 세경이(영화 '완벽한 타인')이가 지워질까 걱정됐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지인들과의 만남을 끊고 계속해서 정수민으로 살도록 설득하고 설득하며 끝없이 괴롭히며 버텼다. 아무도 없는 정수민을 위해 스스로 정수민으로 살려했다. 그 외로움에 지쳐 한번은 퇴근길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수민이가 나쁜 캐릭터지만 제가 수민이로 살았고 수민이를 목격했잖아요. 수민이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 외로움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잘 몰입하게 됐어요. 지금 응원해 주시는 것들이 그때 혼자 외로웠던 걸 안아주시는 것 같고, 무의미하지 않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아직 수민이가 남아있어서, 1년 동안 수민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느꼈으니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수민이를 진짜 잘 담으려고요. 다음 캐릭터에 도움이 되게끔. 저는, 아직 치유 중입니다."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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