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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고척 박승환 기자] "노모-박찬호의 나무가 탄탄하게 자랐다"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 메이저리그 개막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LA 다저스의 맞대결에 '시구자'로 나섰다. 그리고 시구 행사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의 시간을 가졌다.
박찬호는 최초의 '코리안 빅리거'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가진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인물이다. 코리안 빅리거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다. 한양대 재학 중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눈에 든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를 시작으로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거치는 등 통산 17시즌 동안 467경기에 등판해 124승 98패 평균자책점 4.36의 성적을 남겼다.
현역 시절에는 다저스에서 가장 많은 9시즌을 뛰었지만, 샌디에이고에도 2년간 몸담았고, 현재는 샌디에이고에서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다저스를 비롯해 샌디에이고와도 연이 깊은 박찬호는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서울시리즈 개막전의 시구자로 선정됐다. 그리고 30년전 빅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던 당시 사용했던 '롤링스'사의 글러브를 착용하고, 파드리스(Padres)와 다저스(Dodgers)의 유니폼이 반반 합쳐져 'Paders'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섰다.
시구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박찬호는 '투머치 토커'라는 수식어에 맞게 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저스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박찬호는 "다저스라는 팀은 나를 통해 처음 한국 팬들에게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IMF로 굉장히 어려웠는데, 스포츠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푸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던지는 모습을 기대하고 승리했을 때는 기뻐하고 잘 안됐을 때는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찬호는 "50~70대의 한국 팬들에게 다저스는 굉장히 좋은 추억이다. 지금 젊은 팬들은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류현진이 다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활약했기 때문에 특정 팀보다는 메이저리그의 다양한 팀을 좋아하게 됐다. 얼마 전 야구 캠프를 하면서 어린 선수들과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도 다양한 팀의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나 다저스는 첫사랑이고, 내게 로스앤젤레스는 고향과도 같은 팀"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이날 박찬호가 가장 목소리를 높인 대목이 있었다. 바로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된 것에 관해서다. 샌디에이고와 다저스에만 현재 5명의 아시아 선수가 개막 로스터에 포함이 돼 있다. 샌디에이고는 '어썸킴' 김하성은 물론 '미·일 통산 196승'의 다르빗슈 유, 일본프로야구 '최연소 200세이브' 마쓰이 유키,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 '일본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다. 만약 고우석까지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면, 총 6명의 아시아 선수가 포진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던 시초는 박찬호 그리고 노모 히데오다. 노모 또한 일본의 전설. LA 다저스와 뉴욕 메츠, 밀워키 브루어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보스턴 레드삭스, 탬파베이 레이스, 캔자스시티 로얄스 등에서 12시즌 동안 123승 109패 평균자책점 4.24의 성적을 남겼다. 현재 박찬호가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그 최다승을 기록 중이라면, 노모가 그 뒤를 잇고 있는 셈이다.
박찬호는 '다섯 명의 아시아 선수가 로스터에 있다'는 말에 "30년전 나는 혼자였다. 내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던 1995년 노모 히데오가 와서 동양인의 문을 활짝 열었다. 당시 마이너리그에서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조차도 노모가 열어 놓은 문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내겐 기회였다. 노모가 팀 메이트로 좋은 활약을 하면서 동양인의 메이저리그 문은 더 활짝 열리고, 단단히 자리가 잡혔다. 이후 스즈키 이치로, 다르빗슈, 김하성, 류현진, 추신수 등 더 많은 동양인 선수들이 빅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찬호는 수많은 동양인 빅리거가 있는 것에 매우 감격한 모양새였다. 이유는 자신과 노모가 뿌린 씨앗이 싹을 트고 열매로 이어진 까닭이다. 그는 "동양인 선수들을 보면 노모의 나무, 박찬호의 나무가 탄탄하게 자랐고, 그 열매들이 많은 동양인 메이저리거를 이끌어가는 기회가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꾸면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박찬호는 선배들이 쌓은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더 훌륭한 선수들이 등장하기를 희망했다.
'코리안특급'은 "기록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2007년 나는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보냈어야 했는데, 당시 '여기까진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노모의 기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도전하게 됐다. 노모의 기록이 나를 재기하게 만들었고, 목표였다. 용기를 줬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124승의 기록도 당연히 깨져야 한다. 이 기록들이 또 다른 다음 세대의 좋은 목표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박찬호는 30년전의 글러브를 끼고 시구에 임했다. 그리고 그 공을 김하성이 받았다. 시구가 끝난 뒤 둘은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박찬호는 곧바로 1루 더그아웃으로 향해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도 포옹과 함께 인사를 나눈 뒤 이날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고척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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