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13] 내가 다시 베를린을 사랑할 수 있을까

페르가몬박물관에 소장된 이슈타르의 문. 나를 베를린으로 이끈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여행작가 신양란] “페르가몬박물관에 있는 ‘이슈타르의 문’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누가 내게 베를린에 왜 가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베를린에 어찌 이 페르가몬박물관만 있겠는가. 브란덴부르크 문과 베를린 장벽의 흔적은 베를린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관광 자원이다. 근교 도시인 포츠담은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는 포츠담 회담(1945년 7월 26일에 포츠담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개최된 회담으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조선의 독립을 결정했는데, 그것을 일본이 거부함으로써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이 열렸던 곳이니 나로서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베를린은 베를린만의 개성이 있는 도시였다. 5개 중요 박물관이 모여 있어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박물관 섬,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첨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냉전 시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연결하던 연합군 측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훔볼트대학, 독일 기술 역사를 집약해 놓은 기술박물관 등등 독일스럽고 베를린스러운 곳이 즐비했다.

냉전 시대 독일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베를린 장벽은 거의 철거되었고, 포츠담 광장 쪽에 일부가 전시되어 있어 여행자들의 시선을 끈다.

그런데 나는 베를린에서 유럽 어느 도시에서도 겪지 않았던 지독한 경험을 하고 말았다.

먼저, 소매치기당할 뻔한 이야기를 해보자.

하루는 기술박물관 근처 전철역에서 남편과 떨어지게 됐다. 남편을 찾느라 계단 끝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약간 움직임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웬 청년이 관광 지도를 펴서 자신 손을 가린 채 내 백팩을 뒤지고 있었다. 한 패거리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옆에 붙어 서서 남자의 몸을 가려주고 있었고.

뜻하지 않게 눈이 마주쳐버린 나는 당황스러워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정작 나쁜 짓을 하다가 딱 걸린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Sorry, madam(죄송합니다, 부인)” 하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가방을 보니 활짝 열려 있었다. 다행히 그의 손이 지갑에 닫기 직전에 내가 눈치를 챘는지 지갑은 무사했다. 하여간 그 일로 인해 나는 ‘유럽에서 뒤로 맨 가방은 남의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베를린 근교 도시인 포츠담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는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회의실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의 결정이 우리나라의 독립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우리에게도 관심이 가는 장소이다.

그러나 그다음 날 겪은 일에 비하면 소매치기 미수 사건은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훔볼트대학 앞 베벨 광장은 히틀러가 분서를 저질렀다는 곳인데, 그곳엘 갔다가 베를린 건달들에게 남편이 시계를 강탈당했다. 소매치기가 모르는 사이 슬쩍 훔쳐가는 것이라면, 강탈은 힘으로 억압한 다음 강제로 빼앗는 행위다. 당연히 후자가 더 치욕적이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데, 바로 남편이 그런 강탈을 당한 것이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날 우리 꼴이 꼭 그랬다. 남편은 본래 “외국인인 우리에게 길을 묻는 놈은 수상한 놈이야. 괜히 말을 걸어 혼을 빼놓은 다음 물건을 슬쩍 하려는 수작이지” 하며 쓸데없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내게 신신당부하는 사람인데, 그날은 무슨 까닭인지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꼬박꼬박 대꾸를 해줬다. 내가 그 자리를 피하자고 하는데도 계속 그러는 게 흡사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명소인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 통일의 역사적 이벤트가 열린 정소로도 유명하다.

젊은이들은 설명이 고맙다며 악수하자고 했고, 남편은 아무 경계 없이 한 청년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젊은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장난치듯 남편을 감싸는데, 내가 보기에 장난이 아니었다. 남편도 그때는 사태를 깨닫고 그들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떼어내려고 악을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참 실랑이가 계속된 다음, 거짓말처럼 그들이 물러났다. 사색이 된 남편은 얼른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들이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그런 줄 알았던 것이다. 카메라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남편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의 목표는 카메라가 아니었다. 남편의 시계가 사라졌다. 내가 공항 면세점에서 큰맘 먹고 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그걸 목표로 삼고 접근한 건달에게 속절없이 당했다. 

강제로 시계를 빼앗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남편 손목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 일을 겪은 다음, 나는 베를린이란 도시에 만정이 떨어졌다. ‘내가 다시 베를린을 사랑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아직 나는 대답을 못하고 있다.

신양란 작가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베를린 장벽이 철거된 후, 그 흔적이 이렇게 남았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나아가 동독과 서독,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을 각각 걷고 있는 셈이다.

동서 냉전 시대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설치된 여러 검문소 중의 하나인 체크포인트 찰리는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던 곳인데, 현재는 여행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어 세상이 변했음을 알려준다.

독일을 통일한 카이저 빌헬름 1세의 이름을 딴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첨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역사를 기억하려는 독일인의 의식을 보여준다.

기술 강국 독일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술박물관. 사진 속 전시실은 하늘을 날기 위해 인류가 시도했던 다양한 방법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훔볼트대학을 끼고 있는 베벨 광장은 히틀러가 책들을 쌓아놓고 불태운 장소로 알려져 있다. 사진 속 유리판 아래를 보면 텅 빈 서고가 있어, 이곳이 인류 문화의 정수를 말살한 야만적인 장소임을 알려준다.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에 있는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에는 특이하게도 감자가 놓여 있다. 감자를 받아들여 기근에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한 까닭에 ‘감자 대왕’이라는 애칭이 붙은 그를 기리는 특별한 방법인 것이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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