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14] 고양이 이야기

[교사 김혜인] 아이가 고양이 그림을 집게손가락으로 짚으며 “이야아아아오”한다. 말이 느린 아이가 유일하게 흉내 낼 줄 아는 동물 소리이다.

아이는 여러모로 고양이를 닮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조심스러워하는 성향이나, 멀리서 가만히 관찰하기 좋아하는 태도가 고양이를 떠오르게 한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10년 전 바로 이맘때쯤 수컷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지인이 새끼를 밴 고양이를 구조해서 출산을 도왔다. 어미는 자신이 거두고 새끼들은 아는 사람에게만 입양 보냈다. 그중 한 사람이 나였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 내외라고 들었다. 좀 더 장수하는 고양이는 20년을 살기도 한다고. 평균 수명만 따졌을 때 내가 고양이를 먼저 떠나보낼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그래도 건강하게 키워서 20년 가까이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고양이가 옆으로 픽 넘어졌다가 일어나길래 이상하게 여겼다. 두 번째로 그런 증상을 봤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엑스레이를 찍은 뒤 수의사는 내게 비대성심근병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HCM)이라는 병명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수의사는 친절하고 담담한 태도로 “고양이의 수명이 조금 짧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명이 조금 짧다는 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10년 정도일까. 슬퍼하며 수명이 얼마나 되는 거냐고 물었다. 수의사는 “앞으로 3개월”이라고 대답했다. 불행히도 고양이는 20년이 아니라 2년도 채 살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두 번째 생일을 2주 앞둔 때였다.

고양이를 화장하러 가던 길은 무척 씁쓸했다. 동물 화장터로 정식 인가를 받은 곳이었는데, 들어가는 골목길에 ‘혐오시설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그곳에서 고양이를 화장하기 전에 간단히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엄마는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믿는 분인데, 그날 고양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해 주셨다.

나는 장례와 화장이 진행되는 내내,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그 기도가 감사했다고 전하지 못했다. 나는 한동안 고양이의 유골을 끌어안고 침대 옆 바닥에 누워서 잤다. 사실 잠을 자지 못했다. 고양이가 내게 “야옹”하며 다가올 것만 같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다음 생애엔 내 아들로 다시 태어나렴.’ 결혼조차 계획이 없었는데 윤회도 믿지 않는데 그랬다.

그래서였을까. 임신을 확인하고 아직 아이의 성별이 나오기 전에, 나는 막연하게 아이가 아들일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고양이가 내게 왔던 그 무렵, 3.18kg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두 번째 생일이 이제 2주도 남지 않았다. 아이는 생애 첫 생일에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증상이 꽤 심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깊게 파이는 흉곽함몰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잘못될까 봐 너무 무서웠다. 한밤중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힘겹게 숨 쉬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20여 분을 달려 병원 앞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차에서 모처럼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밤이 자주 떠오른다.

오늘도 아이가 바닥을 구르며 심하게 떼를 썼다. 그 모습이 속상해서 나도 같이 울어 버렸다. 잠든 아이 곁에서 남편이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우리가 이런 것만 걱정하고 속상해도 되는 게 참 다행이라고.

잠든 아이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본다. 이불 밖으로 나온 발도 가만히 만져 본다. 고양이를 보내고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밤도, 응급실 앞에서 차를 돌리던 그 밤도 떠오른다. 

이 밤, 두 번째 생일을 앞둔 아이에게 바라는 점은 하나뿐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연재를 4월 9일엔 한 주 휴재합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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