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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잘못된 시작, 끊겠습니다"
한화 이글스 류현진은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팀 간 시즌 3차전 원정 맞대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투구수 94구,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고대하던 복귀 첫 승을 손에 넣었다.
류현진은 이번 겨울 8년 170억원이라는 KBO리그 역사를 새롭게 쓰는 초대형 계약을 맺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후 뒤늦게 한화와 손을 잡았지만, 그동안 착실하게 몸을 만들어왔던 류현진은 시범경기 2경기에서 9이닝을 소화, 2승 무패 평균자책점 3.00으로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정규시즌도 아닌 시범경기였던 만큼 경기 결과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현역 빅리거'에 가까운 류현진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 류현진의 투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류현진은 지난달 23일 LG 트윈스와 정규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3⅔이닝 동안 5실점(2자책)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29일 KT 위즈를 상대로 류현진은 다시 한번 마운드에 올랐고, 6이닝 동안 9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등 2실점(2자책)으로 역투했는데, 이때는 타선이 류현진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서, 다시 한번 복귀 첫 승과 연이 닿지 않았다.
직전 등판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류현진은 지난 5일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나선 세 번째 등판에서 4회까지 무실점의 탄탄한 투구를 선보였다. 그런데 5회가 시작된 후 갑작스럽게 공략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7타자 연속 안타를 허용하는 등 무려 8개의 안타를 맞으면서 9실점(9자책)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이는 류현진의 KBO리그 커리어 내 최다 실점, 메이저리그 경력까지 넓히면 최다 자책점 경기라는 '수모'로 연결됐다.
지난 등판의 충격 때문일까. 이를 갈고 나온 류현진의 이날 투구는 완벽 그 자체였다. 류현진은 1회 시작부터 두산의 상위 타선을 삼자범퇴로 묶어내며 경기를 출발했다. 2회에는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뒤 양석환에게 볼넷을 내주며 첫 출루를 허용했으나, 후속타자 박준영을 132km 체인지업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매듭지었다. 그리고 3회 장슨현-김대한-김태근으로 이어지는 두산 타선을 상대로 두 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다시 한번 삼자범퇴 이닝을 선보였다.
3회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노히트' 투구는 계속됐다. 류현진은 4회 허경민을 133km 체인지업으로 삼진, 양의지를 2루수 묶어내며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쌓았다. 이후 김재환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후속타자 강승호를 133km 체인지업으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5회에도 양석환과 박준영까지 깔끔하게 묶어내며 4⅔이닝 노히트 투구를 완성했다. 여기서 류현진은 대수비로 출전한 김기연에게 130km 체인지업을 공략당해 첫 안타를 맞았는데, 김대한을 113km 커브로 삼진 처리하며 마침내 승리 요건을 손에 넣었다.
가장 아슬아슬한 투구는 6회였다. 류현진은 선두타자 김태근을 중견수 뜬공 처리하며 이닝을 출발, 후속타자 허경민에게도 우익수 방면에 뜬공을 유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요나단 페라자가 평범한 뜬공을 잡았다가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이에 당황한 류현진은 후속타자 양의지와 승부에서 폭투까지 기록하면서 1사 2루 위기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류현진은 침착하게 양의지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냈고, 이어나온 김재환까지 우익수 플라이로 돌려세우면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기록했다.
한화 타선은 넉넉하진 않지만, 경기 시작부터 류현진에게 한 점을 안긴 뒤 4회 추가점을 뽑아냈다. 그리고 8회 승기에 쐐기를 박는 점수까지 뽑았다. 마운드도 제 몫을 다했다. 류현진이 내려간 뒤 장시환(1이닝)-한승혁(1이닝)-주현상(1이닝)이 차례로 올라 뒷문을 걸어잠갔고, 류현진은 지난 2012년 9월 25일 잠실 두산전 이후 무려 4612일 만에 개인 통산 99번째 승리를 수확, 팀 연패 탈출의 선봉장에 섰다.
지난 5일 자신의 대량 실점으로 인해 연패가 시작됐던 만큼 류현진은 조금 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경기 후 류현진은 바뀐 헤어스타일에 대한 말에 "변화를 줬다"고 너스레를 떤 후 첫 승에 대한 소감을 묻자 "늦은 감이 있다. 많이 늦었죠. 키움전의 경우 당일에만 충격을 받았다. 다음 경기가 있고,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처럼 좋은 경기로 이어진 것 같다. 나로 인해 연패가 시작됐다. 오늘 경기 전 호텔 사우나에서 투수코치님을 만났는데 '잘못 시작된 것을 끊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게 돼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KT전을 제외하면 아쉬운 투구가 거듭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류현진은 "그동안 몸 상태는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제구의 문제였다. 특히 한국에 온 이후 말썽이었던 체인지업을 다르게 던지면서, 타자를 잡아내 만족스럽다. 그립은 같지만, 팔의 스로잉을 빠르게 했던 것이 이전 경기들보다 체인지업의 스피드도 빨라졌고, 직구와 비슷하게 가면서 많은 범타와 헛스윙 유도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에게서 직전 경기까지 투구수가 70구로 향하면서 집중타를 맞는 그림이 자주 연출됐다. 류현진은 '70구 이후 구위까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에 "구위가 떨어졌다기보다는 70구 이후에 안타를 맞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오늘의 경우 70구 이후에 안 맞았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안 나오지 않을까. 결과론"이라고 활짝 웃었다.
이날 잠실구장은 류현진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랐다. 류현진이 등판할 때는 물론 마운드를 내려갔을 때, 경기가 끝났을 때까지 한화팬들은 '류현진'의 이름을 연호했다. 류현진은 "진즉에 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오늘은 경기가 끝난 후가 더 좋았다"며 "요즘 한화 팬분들께서 매 경기 홈-원정 없이 많이 찾아와 주신다. 우리 선수들도 그만큼 집중해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99승째를 수확한 류현진은 이제 KBO리그 통산 100승 사냥에 나선다. 다음 상대는 NC 다이노스다. 류현진은 100승에 대한 질문에 "매 경기 똑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오늘처럼 선발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100승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1회부터 마운드를 내려오기 전까지 항상 똑같이 하겠다"고 다짐했다.
잠실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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