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실투를 던지면 KBO리그 타자들은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LG 트윈스 디트릭 엔스는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팀 간 시즌 4차전 원정 맞대결에 선발 등판해 6⅓이닝 동안 투구수 105구, 4피안타 2볼넷 4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역투하며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와 함께 시즌 4승(1패)째를 손에 넣었다.
엔스는 2023시즌이 끝난 뒤 아담 플럿코를 대신해 LG가 총액 100만 달러(약 13억원)을 투자해 영입한 투수. 메이저리그에서의 커리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2021시즌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9경기에 나서 2승 1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2.82로 짧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뒤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와 연이 닿았다. 엔스는 세이부에서 첫 시즌 23경기에 등판해 10승 7패 평균자책점 2.94로 활약하며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12경기에서 1승 10패 평균자책점 5.17로 부진한 끝에 유니폼을 벗게 됐다.
이러한 엔스에게 관심을 드러냈던 것이 LG였다. 큰 기대 속에서 '디펜딩 챔피언'의 유니폼을 입은 엔스는 시범경기 2경기에 등판해 1승 평균자책점 1.80로 기대감을 키웠고, 지난 3월 23일 한화 이글스와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6이닝 2실점(2자책)으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기록하며 첫 승을 수확하는 기쁨을 맛봤다. 게다가 두 번째 등판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6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11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등 무실점을 기록하며 2승째를 수확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아시아 야구에 대한 경험이 있었던 만큼 엔스는 KBO리그에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었는데, 지난달 21일 SSG 랜더스와 맞대결에서 5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8피안타(2피홈런) 2볼넷 8실점(8자책)으로 갑작스럽게 부진하더니,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는 5이닝도 채 소화하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직전 등판이었던 두산 베어스와 맞대결에서도 5이닝 동안 7피안타 1볼넷 5실점(2자책)으로 아쉬운 투구를 거듭했다. 이에 염겸엽 감독을 비롯한 LG 코칭스태프들이 엔스의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시범경기-정규시즌 초반과 달리 엔스가 갑작스럽게 난조를 보인 이유는 팔 각도의 문제였다. 갑작스럽게 팔이 낮아졌던 것. 염경엽 감독은 10일 경기에 앞서 "시즌 초반에는 슬라이더와 커터, 우타자의 스윙을 이끌었던 것들이 안 나오고 있어서 이유를 찾아보니 팔 높이가 낮아졌더라"며 "컷 패스트볼이 맞으니, 이제 커브를 던지다가 팔이 내려오게 됐다. 커브의 겨우 팔 각도를 내리는 것이 공의 각도가 커진다. 그리고 커브를 스위퍼식으로 던져본다고 하면서 팔이 더 내려왔다. 그러면서 모든 구종의 각이 다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염경엽 감독은 엔스에게 팔 각도를 다시 올릴 것을 주문했는데, 이날 KBO리그 진출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1회 삼자범퇴로 롯데 타선을 막아낸 엔스는 2회 2사 1, 2루의 위기도 잘 넘겼다. 첫 실점은 3회였는데, 각종 불운이 겹쳤다. 윤동희에게 내야 2루수 방면에 내야 안타를 내준 후 고승민에게 맞은 타구가 1루수 앞에서 크게 튀어오르면서 우익수 앞쪽으로 향하는 2루타가 된 것. 게다가 이어지는 2, 3루에서 빅터 레이예스를 상대로 유격수 방면에 땅볼을 유도했는데, 이때 구본혁이 송구 실책을 범하면서 아웃카운트 조차 만들지 못하고 실점했다.
하지만 더이상의 변수는 없었다. 엔스는 이어지는 1, 3루 위기에서 전준우와 정훈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매조졌고, 4~5회 롯데 타선을 모두 삼자범퇴로 매조졌다. 그리고 6회 또한 별다른 위기 없이 막아낸 뒤 투구수가 90개를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 유강남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이후 엔스는 오선진과 대결에서 무려 11구까지 가는 승부를 펼친 결과, 아쉽게 볼넷을 내주게 됐고, 더이상 투구를 이어가지 못했으나, 마운드를 이어받은 김대현이 실점 없이 이닝을 매듭지으면서 6⅓이닝 1실점 투구가 완성됐다.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엔스는 "기분이 굉장히 좋고,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그리고 시리즈의 행방을 좌우할 수 있는 첫 번째 경기였는데, 그 경기를 잡음으로써 우리가 기선제압을 할 수 있었던 점이 만족스럽다"며 "다른 것보다 경기 상황에 집중하면서 투구를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했다. 투수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는 것과 아웃카운트를 빨리 잡는 것, 타자들에게 약한 타구를 이끌어내면서 우리 야수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이 세 가지 포인트를 마운드에서 잘 실행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팔 각도에 대한 수정 요청을 받은 뒤 호투를 펼친 만큼 이에 대한 질문도 피해가지 못했다. 엔스는 "데이터 분석팀과 코칭스태프가 동행해서 한차례 미팅을 진행했다. 그때 팔 각도가 낮아졌다는 것을 짚어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던지는 느낌으로 던지려고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기본적인 것을 지켰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현재 팔 각도나 몸 상태는 좋다. 매번 무엇을 개선시키고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코칭스태프, 전력분석팀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잘 설명해주는 스태프가 있기에 든든하다. 나는 마운드에서 내 공을 잘 던지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염경엽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이례적으로 코칭스태프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사령탑은 "엔스가 선발로서 좋은 피칭을 해줬고, 특히 전력분석과 투수코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전력분석에서 피칭 디자인을 바꿔주면서 박동원이 좋은 리드를 할 수 있었다. 투수코치가 투수 플레이트를 3루로 조정하며, 체인지업의 스트라이크 비율을 높여주고, 또 팔의 각도를 높여준 점 등이 주효하며 엔스가 좋은 피칭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 같다. 전력분석과 투수코치의 노력 덕분에 엔스가 오늘 좋은 피칭을 해줬고, 다음 경기도 기대가 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엔스가 LG의 전력분석팀과 코칭스태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수정이 이뤄졌다.
이날 경기 전까지 최근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46으로 부진했던 엔스, 당연히 마음고생도 했다. 그는 "좌절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지금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볼배합을 잘해서 타자 성향에 따라 잘 섞고, 포수가 내는 사인에 맞게 원하는 대로 공을 던지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며 "켈리로부터는 '시즌을 치르다 보면 당연히 업 다운이 있기에 최대한 재밌게, 긍적적인 마음을 가져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박동원과 생각이 일치했던 것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무대는 물론 일본에 이어 KBO리그까지 경험하게 된 엔스. 최근 팔 각도가 낮아졌던 것에 대한 영향도 있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KBO리그 선수들이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KBO리그 타자 수준이 굉장히 높다. 실투를 던지면 KBO리그 타자들은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때문에 실투를 최소화하고 공격적인 투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마운드에 집중을 하고, 상대 타자에 따라 직구와 변화구를 잘 섞어 던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엔스가 시즌 초반에 보여줬던 탄탄한 투구를 펼치게 되면서, LG는 큰 고민 한 가지를 덜게 됐다.
부산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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