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전기차 화재 매년 증가 추세…2018년 3건→2023년 72건 폭발적 증가
유럽, 2026년 '배터리 여권' 도입…미국 캘리포니아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
중국,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 구축
국토부, 제조사 등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 검토
[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최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터리 정보를 제대로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불이 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EQE 모델에는 중국 CATL과 파라시스(Farasis)의 배터리 셀이 들어있는데, 화재 차량은 파라시스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 배터리 제품은 2021년 화재 위험으로 중국 내에서 리콜을 시행한 사례가 있어 배터리 문제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기차 화재 건수 매해 늘고 있다.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 등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자동차 업계는 이번 화재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지만 전기차 화재가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공포심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법으로 규정된 전기차 충전기 설치 의무를 꺼리거나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진입을 막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 알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해외의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확산하면서 유럽연합(EU)과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관련 제도가 미비해 소비자 알 권리 보장이 시급한 실정이다.
EU는 오는 2026년부터 '배터리 여권'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배터리의 생산, 이용, 폐기, 재사용, 재활용 등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해 제공한다. 배터리 여권에는 배터리 타입, 모델, 생산 날짜, 화학 성분, 수리 가능성 및 내구성 등의 정보가 포함된다. 해당 정보는 배터리팩에 부착된 라벨이나 QR코드를 통해 공개되며, 소비자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가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ACC(Advanced Clean Car)Ⅱ 규정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다.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의 정보를 라벨에 표시하고 소비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ACCⅡ는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신차 중 무공해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의 연도별 비중을 명시하는 증명이다. 전기차의 사이드도어 등 소비자가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라벨을 부착하도록 한다. 중국도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EVMAM-TBRAT)을 구축하는 등 이미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국제기구에서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권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소비자 선택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배터리 원산지나 제조회사의 출처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등 불공정한 표시로서 지양해야 한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전기차 제조사 외에는 배터리 제조사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배터리 정보 공개가 이미 세계 추세인 만큼 안전한 전기차 주행과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관련 법·제도 정비는 불가피한 전망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도 내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를 통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배터리 정보를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배터리 인증제는 제작사들이 전기차 배터리가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를 국토부 장관의 인증을 받고 제작·판매하는 것으로 '정보 공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 알 권리 보장 필요성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긴급 회의를 열고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로 등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는 오는 12일 환경부 차관 주관으로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전기차 화재 관련 회의를 열고, 내달 초쯤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등록증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담거나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차량 브로슈어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포함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매체 인터뷰를 통해 "'배터리 이력제'를 도입해 배터리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어느 회사의 제품이 장착되는지 등을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차량 등록증에 제작사를 명시하고 배터리 고유 번호를 차대번호처럼 공개하는 등 생산부터 처리까지 모든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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