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해외여행이란 건 결국 우리나라와 다른 풍광과 문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웃 동네나 진배없는 친숙한 분위기를 보려고 큰돈 쓰며 남의 나라로 떠나지는 않겠다.
아쉽게도 여행 중에 만난 현지인과 소통하고 인정을 나눌 수 있다면 여행의 의미가 더해질 텐데. 나는 언어 문제로 그런 걸 꿈꾸기 어렵다. 손짓 발짓 섞어 길을 묻고 물건을 사는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때때로 친절한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만난 사람들도 내게는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때 어린이책 작가를 꿈꾸었던 나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그림책을 사 오곤 했다. 페낭에서도 말레이시아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일삼아 조지타운으로 나갔다.
버스로 조지타운 중심가까지 간 다음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경찰서 근처에 있다는 그 서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 앞 가게에 들어가 서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봤다. 주인이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냥 말로 설명해도 되련만 굳이 나를 서점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가 손으로 가리켜 알려주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가까운 거리이긴 했지만 심성이 친절하지 않으면 그럴 수 없겠다.
그림책을 산 다음, 점심때가 되었기에 밥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허름한 식당이 내 수준에 맞을 것 같아 현지인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긴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음식 사진이 담긴 메뉴판이 없고, 식당 벽 위 메뉴표 또한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주문을 못하고 난감해하고 있자, 사정을 눈치챈 종업원 아주머니가 다가와 옆 사람이 먹는 것을 가리키며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 했지만, 그가 날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친절이 참 고마웠다.
식사를 마친 다음, 기왕 조지타운까지 나간 김에 영국 식민지 시대 흔적인 콘월리스 요새에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옆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젊은 여자 무리에 말을 걸었다.
“콘월리스 요새를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버스로 갈 수 있나요?”
그러자 그들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고개만 저었다. 내 영어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콘월리스 요새가 어디 있는지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의 답답한 대화를 보고 있던 아까 그 친절한 종업원 아주머니가 또 한번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눈치를 보아하니 그는 콘월리스 요새는 알지만 거기 가는 버스 노선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본인이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돌아설 수도 있는 일인데, 굳이 다른 종업원 할아버지를 불러 뭐라고 묻고, 그 할아버지는 다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저씨에게 묻고, 그 아저씨는 설거지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부르고…. 순식간에 식당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92번 버스가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93번 버스가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말았다. 나로서는 원하는 정보는 얻지도 못한 채, 한창 바쁜 식당만 들쑤셔놓은 꼴이 되었으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내 뒷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한 할머니가 “우리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그 말을 “나도 마침 그 근처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나를 따라와라” 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래서 얼른 따라나섰는데 알고 보니 그 할머니와 남편 되는 할아버지는 차를 가지고 있었고, 딱한 이방인인 나를 위해 일부러 그곳까지 데려다주려는 것이었다.
그분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곳에 내려주고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택시비 정도면 모르지만 큰돈이면 내 영어 실력으로 따지지도 못할 텐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덜컥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은 그저 순수하게 친절을 베푼 것뿐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도로에서는 사진을 찍으라며 차를 세워주기까지 했으니까.
콘월리스 요새 정문 앞에 내려주며 "여권을 분실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도 해준 그분들의 친절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잠깐이나마 의심했던 것이 죄송스럽기만 하고.
그렇게 조지타운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친절로 덕분에 페낭 여행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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