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미라클' 두산 베어스보다 KT 위즈의 '마법'이 더 강력했다. KT가 2015년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상 최초로 5위팀이 준플레이오프(준PO)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KT는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포스트시즌 두산 베어스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 2차전 원정 맞대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준플레이오프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 선발 라인업
KT : 김민혁(좌익수)-멜 로하스 주니어(우익수)-장성우(포수)-강백호(지명타자)-오재일(1루수)-오윤석(2루수)-황재균(3루수)-배정대(중견수)-심우준(유격수), 선발 투수 웨스 벤자민.
두산 : 정수빈(중견수)-김재호(유격수)-제러드 영(좌익수)-김재환(지명타자)-양석환(1루수)-강승호(2루수)-허경민(3루수)-김기연(포수)-조수행(우익수), 선발 투수 최승용.
전날(2일) 열린 두산과 KT의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 먼저 미소를 지은 쪽은 KT. 경기 초반부터 두산의 선발 곽빈을 폭격하며 기선제압에 성공, '빅게임 피처' 윌리엄 쿠에바스가 무려 9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등 6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그 결과 KT는 '업셋'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고, 지난해보다 한 계단 높은 4위에서 가을야구를 시작한 두산은 1승의 어드벤티지를 잃었다.
'내일'이 없는 같은 입장에 놓인 사령탑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이승엽 감독은 "내일이 없다. 어제 불펜 소모가 많지 않아서 쓸 수 있는 불펜은 다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전날(2일)의 패배를 설욕하고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다짐했고, 이강철 감독 또한 "초반에 쉽지 않으면 바로 (고)영표를 붙일 계획이다. 좋은 기운이 오고 있는 기분이다. 마지막 경기를 역전해서 이기다 보니 좋은 기운이 오는 것 같다. 오늘도 좋은 경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경기 시작부터 어수선했던 분위기
상황은 이러했다. 1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멜 로하스 주니어가 두산 선발 최승용을 상대로 3루수 방면에 강습 타구를 보냈다. 이때 두산 3루수 허경민 타구를 잡아낸 뒤 1루에 공을 뿌렸는데 악송구가 발생했고, 로하스가 2루 베이스에 안착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두산 벤치가 '스리피트'와 관련해 비디오판독을 신청한 결과 로하스에게 '아웃' 판정이 내려졌다. 심판진의 설명에 따르면 로하스가 1루수 오재일의 글러브를 건드려 '수비방해'가 적용된 까닭이었다.
이에 뿔이 난 이강철 감독은 대기 타석에 있던 장성우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며 비디오판독 결과에 맞섰다. 이로 인해 한동안 설전이 벌어지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강철 감독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일 수 있지만, KBO 규약에 따르면 스리피트에 관한 비디오판독을 진행할 때에는 주자의 주로와 수비방해 여부를 함께 볼 수 있다고 정의된 만큼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고,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경기가 재개됐다.
▲ 뛰는 최승용 위에 날아 올랐던 벤자민
전날 양 팀의 맞대결은 1회를 제외하면 단 한 점도 생산되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투수전의 흐름으로 전개됐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피칭에 나선 최승용의 투구는 기대 이상이었다. 최승용은 1회 비디오판독의 도움을 받는 등 장성우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이렇다 할 위기 없이 KT 타선을 묶어내며 경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2회 오재일을 중견수 직선타, 오윤석을 유격수 땅볼, 황재균을 우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첫 삼자범퇴를 기록했다.
좋은 투구는 이어졌다. 3회에도 모습을 드러낸 최승용은 선두타자 배정대를 삼진 처리하는 등 퍼펙트한 투구로 KT의 공격을 막아냈고, 4회에는 로하스-장성우-강백호로 연결되는 KT의 가장 강력한 타선까지 봉쇄하며 3이닝 연속 삼자범퇴를 마크했다. 기대 이상의 활약 속 5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최승용은 오윤석과 배정대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2사 1, 2루의 위기에서 이닝을 매듭짓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지만 두산 팬들은 최승용의 이름을 연호하며 함성을 쏟아냈고, 최승용은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훌륭한 투구를 펼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최승용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불펜 투수들이 실점 없이 이닝을 매듭지으면서 최승용의 투구도 가장 좋은 시나리오로 마무리됐다.
KT 선발 웨스 벤자민의 투구도 최승용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벤자민은 지난해 15승을 쓸어 담는 등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11승 평균자책점 4.63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두산전 통산 3승 2패 평균자책점 4.62, 올해는 3경기 1패 평균자책점 8.18로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전날(2일) 쿠에바스의 6이닝 무실점 투구에 자극을 받았을까, 군더더기 없는 투구로 두산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벤자민은 1회 정수빈-김재호-제러드 영으로 이어지는 두산의 상위 타선을 삼자범퇴로 묶으며 경기를 출발, 2회에도 퍼펙트한 투구로 순항했다. 3회에는 선두타자 허경민을 잡아낸 뒤 김기연의 포스트시즌 첫 안타의 제물이 됐으나, 이렇다 할 위기 없이 이닝을 매듭지은 뒤 4회 김재호-제러드-김재환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요리했다. 그리고 첫 실점 위기까지도 수비의 도움을 받으며 잘 극복했다.
벤자민은 5회 선두타자 양석환에게 안타를 맞는 등 1사 2루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 허경민에게 좌익수 방면에 안타를 허용했는데, 이때 로하스가 홈을 파고들던 양석환을 홈에서 지워내는 '레이저 송구'를 선보였고, 이에 보답하듯 벤자민은 5이닝 무실점 투구를 완성했다. 그리고 6회 삼자범퇴로 퀄리티스타트를 완성, 7회 퀄리티스타트+(7이닝 3자책 이하)를 완성했다.
▲ '미라클' 두산보다 더 강력했던 KT의 '마법'
지난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생긴 이후 5위팀이 4위팀을 꺾고 준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5위가 4위를 꺾었던 2016년과 2021년에도 끝내 '기적'은 탄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미라클' 두산보다 KT의 '마법'이 더 강력했던 모양새. 정규시즌의 상대전적은 단기전에서 그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날 팽팽한 투수전의 흐름 속에서 먼저 균형을 무너뜨린 것은 KT였다. 스코어링 포지션에 안착해 있던 양석환이 허경민의 안타 때 홈에서 아웃되면서 점수를 뽑지 못하자 6회초 KT가 기선젱바에 성공했다. KT는 6회초 선두타자 로하스가 두산 이병헌을 상대로 2구째 143km 직구를 공략해 좌익수 방면에 2루타를 터뜨리며 기회를 잡았다. 이후 장성우가 우익수 뜬공으로 묶였으나, 로하스가 3루까지 내달리면서 더욱 확실한 찬스가 마련됐다.
KT는 경기 중반에 찾아온 귀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어지는 1사 3루에서 강백호가 1B-2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이병헌의 4구째 바깥쪽 스트라이크존 낮은 코스에 형성되는 144km 직구를 결대로 밀어쳤고, 이 타구는 좌익수 앞으로 향하는 안타로 연결됐다. 당연히 3루 주자 또한 홈을 밟으면서 마침내 선취점이 만들어졌다. 단 1점에 불과했지만, 양의지가 빠진 가운데 김재환과 양석환이 침묵한 두산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큰 격차였다.
경기가 후반부로 향하면서 승리와 가까워진 KT는 선발 벤자민이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자, 8회 '잠수함 에이스' 고영표를 투입해 두산의 하위 타선을 완벽하게 요리하며 승기를 드높였다. 그리고 9회에는 '마무리' 박영현이 등판해 이틀 연속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지금껏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잠실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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