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앙의 지리학 |저자: 로리 파슨스 |역자: 추선영 |오월의 봄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정선영] 이번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30℃를 웃도는 폭염과 열대야 속 사상 처음으로 9월에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나조차도 에어컨을 끈 잠시 잠깐도 참기 어려웠다. “덥다!”는 말이 단전에서부터 나왔다. 한낮에 밖을 나섰다가 ‘이것이 바로 지구 온난화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지구의 이상 기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빙하만 녹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이렇게 달아올라 녹아내리는 모습을 내 생전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구촌 여러 국가가 이상 기온을 저지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파리협정이 대표적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아래로 막고, 1.5 ℃ 이상 기온 상승을 제한하도록 노력하는 게 골자다.
195개 참여국이 이산화탄소 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하는 이 종료 시점 없는 ‘탄소 제로’ 협정 이 맺어진 때가 2015년 말이니 벌써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그사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재앙의 지리학> 저자 로리 파슨스 말을 빌어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산화탄소 배출은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철저히 외주화됐다. 돈이 있는 북반구와 돈이 없는 남반구, 이 불평등은 기후 위험에도 반영된다. 이른바 탄소 식민주의다.
로리 파슨스는 이 책에서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뒤에 숨은 힘의 역학을 파헤친다.
이야기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변두리에 있는 한 벽돌 공장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막스앤스펜서, 갭 등 라벨이 붙은 수많은 옷가지를 마주한다. 놀랍게도 이 옷가지들은 벽돌 가마의 땔감으로 사용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을 약속한 수많은 브랜드가 바로 이곳에서 유독성 연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값비싼 전기 대신 불법 벌목도 공공연히 횡행한다. 이렇게 생산된 저렴한 벽돌은 임페리얼 레드, 러스티카 런던 스톡 같은 영국식 이름이 붙어 부유한 국가로 수출된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밀집해 있는 오늘날, 벽돌 같은 건축 자재는 이렇듯 기후 변화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벽돌 제조 산업은 전 지구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9%를 차지한다. 전체 벽돌의 90%가 중앙아시아 벽돌 가마에서 생산된다. 이 위험한 오염원은 현지인의 건강과 자연 환경에 매우 큰 피해를 입힐 뿐 아니라, 전 지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온난화에 상당한 영향을 여전히 미친다. 문제는 이것이 대부분 온실가스 보고서에 누락돼 있다.
내가 사는 연희동, 연남동 일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기존 건물이 부수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도시 낙후와 이로 인한 범죄 예방을 위해 이곳저곳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환경 파괴가 자행되고 있는지 상상조차 어렵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쓰는, 거의 모든 것은 탄소 배출로 기후 붕괴에 기여한다. 탄소 배출은 특히 글로벌 생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당장 우리가 입는 옷 대부분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진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물론, 생산물 이동 과정(선박, 항공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역시 철저히 가려져 있다.
유럽연합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은 1990년 59억t에서 2018년 42억t으로 감소했다. 재화를 사용하는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모두 합치면 전 지구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한다. 이 수치는 부유한 국가가 탄소 배출량을 가난한 국가로 이전하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탄소 식민주의를 막고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응할 방법은 없는가.
로리 파슨스의 해결책은 이것이다. 베일에 가려진 글로벌 공급망에 대해 우리가 더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것. 이름뿐인 ESG 경영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투명한 공급망부터 제대로 관리 감독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중요한 행동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늘 그렇듯, 변화의 시작은 관심이다.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북에디터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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