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많이 나아졌어요. 중간에 틀려도 당황하지 않고 연주를 이어가잖아요.”
기타 선생님의 말이다. 요즘 나는 영화 <머니볼>의 OST ‘더 쇼’ 연주로 기타 레슨을 시작한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초반부터 연습한 곡인데, 그렇게나 많이 쳤지만 내가 듣기에도 어설프다.
코드를 쥔 왼손은 툭하면 꼬여버리고, 여전히 F코드는 소리가 제대로 나는 일이 잘 없다. 리듬을 살리고 감정까지 담으라는 선생님의 주문을 구현할 길이 요원하다.
그래도 매번 최선을 다해본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이 곡은 한 주간 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가늠해보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얼마 전 연주 중 틀렸는데도 다음 마디에서 연주를 이어갔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연주를 하다 틀리면 그대로 노래 뒷부분을 다 망쳤다. 다시 연주를 이어갈 수 있게 선생님이 “G, 하나, 둘, 셋, 넷” 하고 다음 코드와 들어갈 박자를 짚어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제 틀려도 당황하지 않다니!
그러고 보니 기타 레슨도 어느덧 100회차를 맞았다. 기간으로 따지면 2년이 다 되어간다. 그사이 마음처럼 늘지 않는 기타 실력에 스트레스도 받고 속상한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지인이건 저자건 붙잡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언젠가 내 눈물겨운 기타 분투기를 듣고 한 저자가 이렇게 물은 적 있다. “근데 왜 계속 하시는 거예요?”
좀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F코드만 해도 그렇다. 100번 중 서너 번이나 소리가 제대로 날까 말까다. 손가락 힘을 기르기 위해 최근 악력기까지 구입했건만 쉽지 않다. 기타를 치면서 즐거움은 찰나이고, 좌절의 순간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내가 기타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대체 왜?
지독히도 늘지 않는 실력에 좌절할 때마다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또렷한 답을 찾지 못하다가 최근 그 답 비스름한 걸 찾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살면서 후회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를 그만둔 일이다.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며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러나 삶의 순간순간 알량한 자존심에 너무 빨리 포기해버린 건 아닌지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적당히 실패하지 않을 것에만 도전해왔고 그랬기에 큰 실패 없이 살아왔다. 그러면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한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0회라는 레슨 시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내 기타 실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 레슨 때 내 실력은 제자리걸음일 확률이 높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더 못할 수도 있다. 실패하고 좌절해도 다음 마디를 찾아 연주해나간 것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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