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삼성·현대차, 노사 마찰로 실적 악재 위기 '되풀이'
삼성전자, 창사 55년만의 노조 총파업 위기
현대차그룹, 잘나가는 큰집과 '파업' 일변도 작은집(계열사)
조선업계는 올해 임단협 종결…수주 사업 집중
배달 업계마저 노조 출범하며 노사 대립 '골머리'
반상(盤上)의 흑돌과 백돌이 벌이는 변화무쌍한 혈투는 굴곡진 인생사와 닮아 있다. 절대적인 답도 없는 만큼 승기를 잡을 때도 있지만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한다. 대한민국 경제를 짊어진 굴지의 기업들도 상황은 같다. 기업의 성패를 가를 경쟁에서 때로는 흑이 되고, 때로는 백이 된다.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은 마이데일리가 국내 산업계에서 바둑의 흑과 백과 같은 '팽팽한 승부처'에 주목했다.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올해 자동차·전자·조선·IT 등 국내 산업계는 어김없이 노조와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귀족노조'라는 불명예로 강경 노조와의 신경전이 매년 되풀이되는 현대차는 물론이고 '無노조' 경영이 붕괴된 삼성마저 창사 55년만의 노조 총파업이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경기악화와 미중 대립의 대내외적 긴장국면은 '파업' 일변도의 노사대립으로 정점을 찍으며 실적악화, 실질임금 감소라는 벼랑 끝 상황을 맞딱트리게 한다.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차·기아는 올해 특히 노조와의 힘겨루기로 '진퇴양난'에 처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 실적 부진, 주가 하락 등 대내외적인 악재 속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 총파업 사태까지 맞으며 위기에 놓였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를 비롯한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삼성전자구미노조, 삼성전자노조 동행, 삼성그룹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등 5개 노조가 존재한다.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전삼노가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 전체 노조를 대표해 사측과 교섭에 나서고 있다.
전삼노는 원래 1만명 정도의 노조원이 있었으나 올해 들어 1만8000명 늘어난 3만6685명으로 늘었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 직원 수인 약 12만5000명의 30%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전삼노는 올해 1월 16일 2023~2024년 2년치 병합 임금교섭을 시작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임단협이 길어지자 노조는 지난 7월 8일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노조원 6500명이 참석해 총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총 파업까지 나서게 된건 '성과금'에 대한 공정성 때문이었다. 올해 반도체(DS) 실적이 부진하면서 DS부문 직원들은 매년 산정되는 성과급을 받지 못하게 됐으나 DS부문 임원들은 '장기 성과 인센티브(LTI)'라는 제도를 통해 반도체 호황기였던 2021년~2022년을 포함한 최근 3년간의 실적을 토대로 성과급을 지급받았다. 같은 부서임에도 성과급 차별이 발생하자 파업 사태 촉발한 명분이 된 셈이다.
손우목 전삼노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이익이 나지 않는데 성과급을 달라는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동자더러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경영 악화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임원들은 성과급을 가져가는 현실에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삼노는 10월에 다시 본교섭을 재개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잠정합의안에는 임금 인상률 5.1%, 장기근속 휴가 확대, 패밀리넷 200만 복지포인트 전직원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측은 노조 요구사항을 일부 허용했다. 자사 제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패밀리넷 200만 포인트 지급안을 전 직원에게 적용하고, 노조 총회(교육) 참여 시간을 최대 8시간까지 유급 보장하는 등 약 25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비용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반면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57%가 반대해 최종 부결됐으며, 일부 조합원들은 모든 직원에게 200만 복지포인트를 지급한 것에 불만을 가지며 '노조만을 위한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2일부터는 전삼노의 집행부 탄핵 찬반투표가 실시되는 등 '노조 갈등'까지 빚어지고 있다. 노사 협상을 하는 집행부마저 부재할 경우 삼성전자 노조 파업 리스크는 해를 넘어 내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 사상 최대 실적은 곧 '파업' 연장?…계속되는 계열사 파업 현대차그룹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도 올해 노사 리스크를 피할 수 없었다. 현대차의 파업 역사는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의 '파업'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87년 7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 노조가 설립, 그 해 12월 울산공장에서 대규모 파업과 함께 노조 설립이 공식화됐다. 올해 7월 기준 4만3285명의 조합원 수를 가지고 있는 초대형 노조다.
현대차 노조는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04년에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고, 당시 7~9월 3개월간 장기 파업으로 극심한 생산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현대차 노조는 2019년 이후부터 올해까지는 6년 연속 파업 없는 '무분규 타결'에 성공하기도 했다. 올해 진행된 기본급 인상은 역대 최대 규모다. 노사는 올해 기본급 11만2000원 인상 등의 합의안을 도출했고, 경영성과금 400%+1000만원, 2년 연속 최대 경영실적 달성 격려금 100%+280만원 지급, 주식 25주 지급 등을 타결하는 등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도 했다.
반면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 노조와 사측 대립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노조는 임단협에서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 전년도 매출액의 2%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총파업에 돌입하더니 울산 공장까지 가동 중지시켰다. 그렇게 한 달간 강행한 파업을 최근 중단하며 가까스로 현장에 복귀했으나 현재까지 노사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노조는 임금 격차를 줄여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재차 파업에 나선다는 강경모드다. 최근까지도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현대차그룹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현대트랜시스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된 백철승 부사장 교체를 명분으로 교섭에 미온적이라는 불만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현대위아 등도 노사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위아 노사는 실무교섭과 본 교섭을 합쳐 21차례 진행했지만 모두 무위로 끝났다. 현대제철 협상은 아직도 초기에 머물고 있다. 지난 9월 상견례를 진행한 이후 단 한차례도 본교섭을 벌이지 않았다.
현대제철 노조는 사측이 철강 업황 불황 여파로 경북 포항 2공장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본사 상경 집회에 나섰다. 노조원 300명은 판교 본사로 올라가 공장 계속 가동을 요구했으며,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계열사 노조들의 불만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현대차의 성과를 계열사와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대차그룹은 '쇳물부터 완성차까지'로 대표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생산·판매 효율성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완성차에 필요한 각 부품의 개발·생산 단계에서부터 완성차와 부품사간 협업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각 부품을 적기에 공급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부품 계열사의 임단협 진통이 장기간 계속되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현대차·기아는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하루 빨리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넥스트 레벨'로 넘어가야하는 상황 속에서 노조의 발목잡기가 지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조선업계, '임단협 순항'…배달 업계, 첫 노조 탄생하며 대립각
국내 조선 3사인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은 연내 임단협을 타결하며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한화오션은 올해 5월부터 노조와 접촉하며 교섭을 진행했으며, 지난 10월 임단협 타결에 성공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사측과 노조간의 합의안이 빠르게 마련되면서 파업 없이 9월에 임단협 타결에 성공했다.
HD현대중공업은 앞서 두 회사와 달리 가까스로 임단협이 타결됐다. 노사는 지난 6월 4일 첫 상견례 이후 합의점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 임단협이 지속해서 부결되자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총 24차례 부분 파업을 강행했다. 지난달 말에는 노조 조합원들과 사측 경비대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해 10명이 다치기도 했다. 이후 양측은 대승적 결단으로 합의점을 도출했다. 임단협 파행으로 다시 찾아온 '조선업의 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업계는 호황을 맞으면서 수주 사업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선업 전반에 수주가 잘 이뤄지고 있고 수주 잔량도 충분한 상태"라며 "최근 한미 조선 협력을 포함해 긍정적인 시그널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수수료 정책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배달 업계도 노사 대립의 한 복판에 서게 됐다. 배달 업체 맏형격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근로자들은 지난 19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우아한형제들지회(우아한유니온)를 설립해 사측과 맞서고 있다.
지회는 회사의 높은 영업이익이 구성원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닌, 독일의 모회사로 유출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배민다움'이 훼손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자영업자·소비자에 이어 배민 노동자들까지 소통 부재가 이어져 '배달앱 논란'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배달 플랫폼 4사와 입점업체 단체, 공익위원, 정부기관 등으로 구성된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은 배민과 쿠팡이츠의 중개수수료를 현행 9.8%에서 거래액 기준으로 2.0∼7.8%로 낮추는 차등수수료 방식을 도입하는 상생안을 발표했다. 이후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입점단체 4곳 중 2곳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수용하지 못해 갈등은 되풀이 되고 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에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은 기업 경쟁력과 일자리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원 기자 s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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