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드글드글"…송중기 '보고타', 낯선 땅의 팽팽+치열 생존기 [MD현장](종합)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지구 반대편 낯선 땅 콜롬비아에서 펼쳐지는 한인들의 치열한 생존싸움.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된다. 욕망덩어리 송중기의 긴 연대기,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다.

19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보고타: 기회의 땅'(감독 김성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김성제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중기, 이희준, 권해효, 박지환, 김종수가 참석했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가 보고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박병장(권해효)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소수의견' 디테일한 연출을 보여줬던 김성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날 김성제 감독은 "'보고타: 기회의 땅'은 장르적으로 범죄드라마로 구성했다. 서울이 '범죄도시'가 아닌 것처럼 보고타가 그런 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머나먼 곳으로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넓은 세계로 나가는 줄 알았는데 훨씬 더 작은 공동체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갈등과 우정과 배신을 다뤘다. 그러다 보니 영화적으로 극화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익스트림하게 갔다고 생각한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콜롬비아의 문제 거나 한국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종류의 감정, 떠난 사람들의 감정, 일찍 어른이 돼버린 청년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장르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꿈꾸는 청년 국희는 송중기가 맡는다. 송중기는 머나먼 보고타에 첫발을 내디뎠던 19세 소년 국희가, 가장 높은 6 구역에 들어서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 국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서사를 완성시킨다.

송중기는 지난 3월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에서 탈북자 로기완을 연기한 바 있다. '보고타: 기회의 땅'에서 연이어 이방인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송중기는 "시기상으로는 '보고타'를 먼저 찍었다. 이 영화를 찍다 중간에 '빈센조'라는 드라마를 찍었다"며 "이 영화를 조금 더 찍으면서 마무리를 짓고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를 찍고 '화란'이라는 영화를 찍고 그다음 '로기완'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제일 먼저 선택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부족하지만 드라마라를 하면 영화를 하는 게 내 밸런스에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드라마를 선택할 때는 시청자분들에게 조금의 판타지를 안겨드려야 하는 게 있다. 그래서 영화처럼 감정적으로 스산한 것을 드라마에서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많이 내 취향을 고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기완'과 약간은 비슷한 것 같은 정서를 느끼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살짝 다른 부분은 '로기완'이나 '화란'에서는 조금 의욕이 없거나 삶의 주체의식이 전혀 없다. 흔히 말하는 맥아리가 없다. 국희라는 캐릭터는 내가 선택했던 작품 중에서는 굉장히 주체적이고 자기 의지가 확고하고, 욕망이 드글드글한 욕망덩어리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한번 변주를 해봤다"고 짚었다.

이희준은 보고타 한인 밀수 시장의 2인자 통관 브로커 수영 역을 맡았다. 밀수 비즈니스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 수영은 자신의 이름으로 보고타에 폼 나는 쇼핑몰을 세우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는 인물이다.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수영의 야망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희준은 짙은 콧수염과 구릿빛 피부로 파격적인 비주얼 변신을 선보인다.

보고타 한인 사회의 최고 권력자이자 밀수 시장의 큰손 박병장은 등장만으로 극에 묵직한 무게감을 더하는 권해효가 맡았다.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넉살 좋게 국희와 그의 가족들을 챙겨주는 듯하지만, 진짜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인 박병장은 권해효를 만나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됐다.

이희준은 "촬영을 안 할 때는 현지의 리듬을 좀 느끼고 싶어서 살사학원도 다녔고 댄스학원도 다녔다. 한정된 공간에 좀 위험할 수 있어서 많은 구역을 벗어날 수 없었고, 안전하게 촬영했다"며 "모두가 '보고타'에 대한 이야기만 늘 했고, 어떻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을지,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늘 그런 이야기만 했다"고 화기애애했던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권해효는 "배우로 산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연기를 한 뒤) 후회한다. 왜 저렇게 했지, 이렇게 했지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가 머릿속에서 어떤 기획을 하고 의도했던 그랬던 순간이 많더라. 이 영화는 나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담겼다"고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봤다.

그는 "박병장은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단지 한 세대가 교체될 때 그 교체시기에 항상 마지막 파고는 약간 높지 않나. 그렇게 몸부림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을 때의 느낌과 오늘 봤을 때 느낌이 많이 달랐다. 관객과 볼 때는 또 어떻게 다를까 많이 기대된다. 우리는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 앞에서 압도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보고타: 기회의 땅'이 조금이라도 사람을 다루는 영화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보고타 한인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박병장의 조카 작은 박사장 역은 박지환이 맡아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김 감독은 박지환에 대해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도 이미 '범죄도시' 같은 영화에서 아주 독특한 캐릭터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이후에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가 됐다"며 "장르적인 연기 굉장히 유능한 배우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가장 어쩌면 폭발하는 지점이 없는 역할을 맡아줬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IMF로 사업에 실패하고, 콜롬비아 보고타로 국희를 끌고 온 국희의 아버지 근태로는 김종수가 분한다. 김종수는 "처음에는 굉장히 평범했으면 했다.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에 있을 법한 IMF 때 고난의 일을 겪은 그런 가정의 아버지였기를 바랐다"며 "그 다음 국희가 변해가듯 반대쪽으로, 아래쪽으로 끌어들이면서 국희라는 캐릭터에 포커스가 많이 갔으면 했다. 해외에서 홈리스 분장을 어떻게 할까, 2kg을 뺄까, 극 지점에 그런 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고 연기 포인트를 짚었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남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마약이라는 소재를 배제하고, 의류 밀수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한인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려낸다. 타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까지 총 3개 국어가 오간다. 또한 1997년부터 시작되는 국희의 성장사이자 연대기이도 하다.

이와 관련 송중기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서사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처음 도착했을 때, 완전히 적응해서 살고 있을 때, 후반부 한인상인회 회장을 맡은 뒤. 그 변화를 표현하고 싶은 욕심은 물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첫 번째로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 해봤던 걸 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 같이 작업해보지 않았던 문화권의 사람들과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며 "'빈센조'에서 이탈리아 대사를 한 것처럼 스페인어 대사를 하면 어떨지 호기심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더 컸다"이라고 작품 선택이유를 전했다.

이어 "인물서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굉장히 순수하고 어리던 꼬마 아이가 아버지가 도움이 안 돼서… 아버지는 무능력했고 어머니는 무기력했다는 내레이션도 나온다. 나밖에 할 사람이 없는 거다. 생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국희가 순수한 애가 변해가는 걸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걸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고 털어놨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한국 영화 최초로 콜롬비아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주 무대인 보고타를 가장 큰 메인 로케이션 촬영 장소로 잡고, 카리브해의 휴양도시 카르타헤나, 지중해의 섬나라 사이프러스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이국적인 풍광을 담아냈다.

다만 보고타를 배경으로 밀수 등 다양한 범죄가 펼쳐지는 탓에 부정적인 묘사로 인한 반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의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 대부 이야기가 나오며, 영문 제목으로 '수리남’(Suriname)'을 쓰며 수리남 정부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결국 '수리남'의 영문 제목은 '나르코스 세인츠(Narcos-Saints)'로 변경됐다.

김 감독은 "그런 종류의 구설에 휘말릴까 봐 일부러 조심한 건 없다"면서도 "다만 포브스지에도 나왔던 마약왕이 80년대에 본격적으로 활동했고 93년 보고타에 죽은 걸로 알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내가 설정한 시간 이전에 한 10년 정도 실제 보고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였다. 그리고 영화 속 시간까지도 그런 여진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말이 안 되게 일종의 장르적 허구를 부리려고 애쓰진 않았다. 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의도보다는 현실적인 소재들, 아주 디테일한 것들을 가지려 했다. 서사와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범죄적인 요소들을 다루려고 했다"며 "현지프로덕션하고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데 현지프로덕션은 미국 사람들이어서 훨씬 더 험한 종류의 영화를 만들어서 내가 우려했던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응해서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끝으로 다섯 배우와 김 감독은 '보고타: 기회의 땅'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꼽았다. 먼저 송중기는 "12월 31일 올해 마지막 개봉작이고 2025년 첫 영화이기도 하다. 1월 말, 2월까지 극장에 오래 걸려있었으면 좋겠다.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맛이 또 따로 있지 않나. 맛있게 봐주셨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이희준은 "오늘 영화를 다시 보니까 다 같이 애썼던 게 기억이 난다. 지금도 마이크에 '보고타'라고 쓰여있는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오래 기다렸다. 영화로 극장에서 여러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게 돼서 너무 감개무량하다"라고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권해효는 "이 영화는 내게는 변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겠다고 버티는 자가 변화를 통해 살아남으려고 한다.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변화 앞에 서있는데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함이 있다"며 "꽤 오래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올해의 마지막, 새해의 첫날을 우리 영화와 함께하시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짚었다.

박지환은 "'보고타: 기회의 땅'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모험을 떠나고 재시작을 하는 이야기다. 오늘 보면서 흥미롭고 좋았다. 그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좋을 것 같다. 그 기대를 갖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수는 "각 배우들의 얼굴 표정들이 변하는 게 작은 화면으로는 보실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송중기 배우의 국희의 순수한 얼굴이 단단해지고 차가워졌다가 다시 여유로워진다"며 "수영이의 큰 스케일의 남자 같았지만 지고는 못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변해가는 비참해지는 얼굴, 박병장이 '전화받아'라면서 눈을 크게 뜰 때 뭔가 다른 사람 같지 않나. 그리고 지환이의 댄스, 조현철 배우의 공항에서의 찰진 욕"이라고 하나하나 관전 포인트를 꼽았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연대기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도 있었고 도전도 했던 것 같다. 연대기 영화는 늘 근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재미를 갖기가 쉽지 않다. 긴 시간을 두 시간 안에 캐릭터들의 변화를 담아낸다는 게 나한테는 제법 흥미롭고 아주 괴로웠던 도전이었던 것 같다"며 털어놨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면서 인물들이 입장할 때와 죄다 다른 얼굴을 갖고 다른 감정을 갖게 하고 퇴장한다"며 "그 배우들의 캐릭터를 보면서 함께했던 시간이 나한테도 되게 공부가 많이 됐다. 배우들을 더 존경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관객들한테 잘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보고타: 기회의 땅'은 오는 31일 개봉한다.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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