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 정부·정치권의 밸류업 기조에 발 맞추는 듯 하던 MBK가 돌연 반기를 들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달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단체나 금융당국, 정치권 등에서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다.
정부는 집중투표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나타내는 핵심 정보로 보고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들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적용될 경우 MBK의 적대적 인수와 투자금 회수 등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MBK파트너스·영풍은 전날 "소수주주 보호방안을 최윤범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용으로 악용하려는 꼼수"라며 "겉으로는 주주 보호를 운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본인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제도를 남용하는 것과 동일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미개발(최씨 일가 지분율 88%)이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것에 대해선 법조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고려아연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규정이 명시돼 있는 데다, 상법 제542조에 집중투표를 통한 이사 선임은 주총일 6주 전에 안건을 청구해야 한다는 조항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유미개발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한 정관 변경 청구는 유효하더라도 가결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 청구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단체나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에서 소수주주를 위한 제도로 적극 권장돼 왔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을 내세웠던 MBK파트너스가 이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23일 이사회에서 내달 열릴 임시 주총 안건을 확정했다. 이 중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제안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꼽히는 방안으로 기존의 단순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MBK 측은 집중투표제의 취지와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에 따른 집중투표제 도입 청구 절차에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조건부 집중투표 청구(정지조건부 주주제안)는 다수 사례가 이미 실행됐을 정도로 선례가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제도가 도입됐을 경우 다른 주주의 반대로 고려아연을 인수하는 게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만약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면 투자금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단체나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에서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적극 권장해 온 만큼 반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MBK 측 이외 주주들 역시 집중투표제 도입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정부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장해 오고 있다. 정부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보고서에 명시해야 하는 15개 핵심 지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포함돼 있다.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적인 정보로 많은 주주들이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공개를 의무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적어도 이때부터 집중투표제 도입을 공식 권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MBK가 국내 대기업 전반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만큼 집중투표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다만 고려아연 인수 건처럼 MBK가 직접 대주주가 돼서 향후 매각을 계획할 경우 오히려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MBK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워 놓고, 지배구조가 매우 부실한 것으로 평가되는 영풍과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이제는 여기에 더해 소수주주 권익 보호의 대표 제도로 꼽히는 집중투표제를 반대하기까지 하면서 결국 MBK가 바라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투자금 회수일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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