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모름지기 짜증은 아무한테나 내는 것이 아니다 짜증은 아주 만만한 사람한테나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짜증을 받아줄 마지막 사람은 제 엄마다 엄마들은 보통 자식의 마음과 제 마음속을 분간 못하는 불구, 자식들은 엄마에게 어떤 원죄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빚이 있음을 본능으로 안다”
짜증 때문에 속상해지면 이희중의 시 <짜증론>을 꺼내 읽는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몸살로 몸이 무거웠지만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눈이 내린 뒤라 아이에게 거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오전에 실컷 논 뒤에 아이가 낮잠을 자면 나도 한숨 자리라 생각하며 버텼다. 아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사 먹고 눈을 구경하며 걸었다. 아이는 오전 내내 기분이 꽤 좋았다.
그러나 낮잠 잘 시간이 가까워지니 슬슬 짜증을 부렸다. 안아달라고 짜증, 내려놓으라고 짜증, 집으로 안 가겠다고 짜증, 유모차 태우기 전에 목도리 안 풀어줬다고 짜증, 자기가 원하는 길로 안 간다고 짜증을 내다가 유모차 안에서 잠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현관에 둔 채 곧장 침대에 누웠다. 자고 싶었지만 아이 잠투정에 한껏 예민해진 신경이 쉽게 이완되지 않아서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했다.
설핏 잠들려 할 때 아이가 짧게 ‘이잉’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날 기력이 없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잠시 뒤 더 큰 소리로 “이잉!” 했다.
현관에 나가니 아이가 유모차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왜 이제야 왔냐는 듯이 냅다 짜증을 낸다. 그냥 들어와도 될 텐데 말이다.
짜증이 쉽게 누그러들 때가 있는가 하면, 문제가 해결되어도 짜증 지수가 금방 내려가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가 첫 번째로 ‘이잉’ 했을 때 내가 달려갔더라면 안아만 주어도 됐을 텐데, 두 번째로 “이잉!” 했을 때는 이미 꽤 성난 상태였다.
“잘 잤어?”
“야!”
“안아 줄까?”
“야!”
“이제 거실로 가자.”
“야!”
“엄마라고 해야지.”
“야!!”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버둥거렸다. 그 발을 꼭 내 몸쪽으로 향한다. 의도적인 발길질이다. 내가 몸을 뒤로 살짝 피하자 이번에는 손으로 나를 때리려 했다. 얼른 아이 손을 잡아 저지했다. 손을 놓아주자 애착 이불을 끌어안으며 서럽게 울었다.
아이는 왜 내게 짜증 내고 화풀이하는 걸까. 나도 짜증이 울컥 나서 괜히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이번에는 내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내게 와도 본체만체하고 집안일만 계속 했다.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전화해서 못 오느냐고 묻는 걸 보면, 뭔가 용무가 있는데 말을 안 하시는 게다. 곧바로 친정에 갔지만 무표정하게 있었다.
“왜 찬 바닥에 앉아 있어?”
“안 차가워요.”
“밥은 먹었어?”
“먹었다니까.”
“차 마실래?”
“안 마셔.”
나도 내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 탓도 아닌데 짜증을 낸다. 짜증을 내는 그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짜증을 낸다.
엄마라는 존재는 괜한 짜증과 화풀이 대상이 되곤 한다. 아이를 보며 그게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는 일인가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고치지 못하는구나 생각한다.
엄마가 내게 봉투를 주었다. 며칠 전에 사위에게 옷 한 벌 해주고 싶다고 하시더니, 그래서 자꾸 전화해서 오라고 한 모양이다. 나는 그 순간에도 “이걸 왜 나한테 건네요. 엄마가 사위한테 직접 줘요”라며 짜증을 냈다.
끝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얼굴을 펴지 않았다. 두고두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랬다. “갈게요.” 현관문을 닫으며 그간 바닥만 쳐다보던 눈을 들어 엄마를 짧게 쳐다봤다. 닫히는 문 사이로 엄마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아는 걸까? “세상에서 짜증을 받아줄 마지막 사람은” 엄마라는 것을. 엄마에게 짜증을 내서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내 아이도 내게 실컷 짜증을 낸 뒤에 마음 아파하겠지. 그때가 되면 “짜증을 받아줄 마지막 사람”이 나임을 알고 아이에게 웃어줄 수 있을까.
다시 이희중의 시 <짜증론>을 읽는다.
"짜증이 심한 사람은 엄마만 아니라 다른 식구들한테도 짜증을 낸다 필시 이 사람은 제 식구를 아주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달리 보면 식구를 예사롭지 않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더 심한 사람은 남한테도 짜증을 낸다 이 사람은 아주 힘 있는 놈 아니면 망나니임에 틀림없다 짜증 낼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저 자신한테 짜증을 부린다 이 사람은 저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저 말고는 아무도 안 믿거나 못 믿는 사람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 사람은 필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1월 14일 휴재합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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