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가수는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을 건졌지 않느냐?’라고 했다. 그러니 산다는 것 자체가 수지맞는 장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온 우주가 그에게 선물로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주를 몰랐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우주를 반납하는 셈이다. 다시는 그 우주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거니까.
여기서 문제는 선물을 받고도 그 선물이 너무 크고 넓어서 내 머리로는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은하에는 태양계처럼 하나의 항성이 여러 행성을 거느린 조직이 2000억~4000억 개가 있는데, 다시 우주 전체에는 그런 은하계가 1000억 개 이상 된다고 한다. 그러니 도대체 우주 안에 몇 개의 별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숫자에 어두운 나로서는 도무지 계산이 안 된다.
아니, 별의 숫자만 중요한 게 아니다. 1,000억 개의 은하계 중 하나인 우리 은하 가운데, 2,000억~4,000억 개나 되는 별들의 집단 중 하나에 불과한 태양계는 우주라는 전체 공간을 놓고 보면 모래알보다 작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그 모래알 속을 맘대로 오가지 못한다. 목성이니 토성이니 하는 이웃별은 고사하고, 지구에 바짝 붙어 있는 달조차 내 생전에 여행해 보겠다는 꿈을 못 꾼다. 그건 참 억울한 일이다. 내가 받은 선물인데, 풀어보지도 못한다니 말이다.
지구별은 사실 내가 받은 선물 규모를 놓고 따진다면 먼지보다 작은 것에 불과하다. 우주를 여행하는 것은, 우리 은하를 여행하는 것은, 태양계를 여행하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먼지보다 작은 지구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구석구석 살펴볼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아니, 반납하기 전에 꼼꼼히 살펴보고 감탄하고 감사해하는 것이 선물 받은 자의 도리 아닐까.
자신이 받은 선물에 눈길도 변변히 못 준 채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을 뜬 지인들이 내게는 있다. 그들을 보내며 나는 산다는 것의 허망함을 알았다. 그들 일이 곧 내 일이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나 역시 선물을 제대로 풀어보지 못하고 살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여행에 몰입하게 된 이유다. 한번 반납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귀한 선물을, 제대로 풀어보지도 않고 반납하기는 싫었다. 우주니 우리 은하니 태양계니 하는 거창한 공간은 그만두더라도, 먼지보다 작은 이 지구별만큼은 가급적 속속들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지구별마저도 내게는 만만치 않다.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크고, 언어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갈수록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앞뒤 안 따지고 무작정 떠났다가 좌충우돌한 실수가 이제는 그리울 정도다.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자주 여행을 떠나니 이제 안 가 본 곳이 없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별은 먼지만큼 작은 것 같으면서도 다시 보면 온 우주만큼 크고 넓다. 나는 아무리 기를 써도 지구별의 극히 일부분만 수박 겉핥듯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석구석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겠지.
그래도 나는 앞으로 세상을 구경하는 데 조금 더 용기를 낼 생각이다. 진정한 술꾼이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듯이, 나는 여행 품질이나 방식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떠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기꺼이 공항으로 달려갈 것이다. 내가 받은 선물의 진면목을 하나라도 더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반납할 때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도록 말이다.
이번 회로 칼럼 연재를 마친다. 자랑스럽지 못한 좌충우돌 실수담을 더는 떠벌릴 배짱이 없어 조용히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리고, 앞으로도 여행작가로서 유익한 책을 소개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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