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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 프로 스포츠는 사회주의인가? 왜 유럽 스포츠는 자본주의인가?”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주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손흥민·이강인 등 한국 축구 누구도 유럽 축구의 ‘신인 선발’에 뽑혀 유럽에 가지 않았다. 유럽 축구에는 그런 제도가 없기 때문. 그것은 유럽과 미국 프로 스포츠의 이념 차이에 관한 논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등 유럽 축구와 미국의 미식축구(NFL)·농구(NBA)·야구(MLB) 등은 크게 성공한 프로 스포츠 집단. 경제학자들은 “두 대륙 프로 스포츠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핵심 차이점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한 훌륭한 경제교육의 도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극단의 자유와 헐거운 경제 규제. 자본주의는 경제 활동과 가격을 자유 시장에 맡긴다. 사회주의는 같은 자유 시장에 의존하나 가격을 통제한다. 공산주의는 가격과 사유 재산을 폐지하고 모든 상품·서비스의 공동·국가 소유를 지향한다. 이러한 경제 체제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프로 스포츠라는 것.
■ “치열한 경쟁의 ‘승강제’…EPL은 자본주의 첨병이자 소굴”
유럽 사람들은 공차기를 좋아한다. 축구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 미국인들은 미식축구·농구·야구와 같은 공던지기를 선호한다. 축구 열기는 높지 않다. 운동을 즐기는 방식 외에 미국과 유럽 스포츠는 근본 구조도 다르다.
유럽 여러 나라는 오랜 사회주의 역사 속에 복지국가를 추구해 왔다. 다 함께 고루 잘살자는 것. 이에 비해 미국은 자본주의 꿈을 추구하는 나라로 알려졌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 정도에 따라 부자가 되고 명성을 얻는데 차이가 생기는 사회.
미국 스포츠를 떠올릴 때 언뜻 사회주의가 연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 나라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 대국’으로 불린다. 천문학 숫자의 선수 연봉, 경기장 안팎의 화려함, 눈부신 조명등. 이 모든 것들이 스포츠 산업의 자본주의 기세를 떨치는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MLB·NBA 등이 화려한 외관으로 감추려 하는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면 사회주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럽 프로축구의 운영 방식은 미국 프로 스포츠보다 더 미국 사회에 가깝다. 미국 농구 등의 운영 형태는 유럽 축구보다 더 유럽의 정치·경제를 닮았다.” EPL은 “자본주의 소굴”로 불릴 만큼 NBA·MLB 등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 성향이 강하다. 강력한 자유 시장 경제 주창자들도 당황할 정도로 경쟁 우선 경제 관행을 가졌다.
유럽의 시장경제 자본주의 접근 방식의 기원은 오래다. 오늘날 EPL 규칙은 19세기 후반 태어났다. 당시 영국 축구는 급격한 성장기. 수백 개 축구단이 생겼다. 오로지 축구에만 매달리는 국민은 물론 구단주·선수들도 혼란스러운 경기 일정 탓에 축구 중심 생활 계획을 짜는 데 어려움을 공감했다.
1888년. 12개 구단이 모여 영국의 첫 ‘풋볼 리그’를 창설했다. 정해진 경기 일정 등 축구에 일정한 구조가 생겼다. 꼴찌 구단은 남기 위해 ‘재선거’를 신청해야 했다. 리그가 커지면서 재선거 제도는 승강제로 발전했다. 이는 유럽과 세계 여러 프로축구에서 정착된 형태가 되었다.
승강제는 영국 축구의 특정한 문제인 ‘혼란스러운 풍요’에 대한 맞춤 해결책. 프리미어 리그와 같은 1부에서 변화가 없다면 나머지 수백 개 구단은 더 나은 위치로 올라갈 기회를 영원히 못 얻는다. 고인 물들만의 경쟁이 계속된다면 더 높은 수준을 바라는 국민은 축구에 흥미를 잃거나 반발할 수도 있다. 그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다.
시즌 끄트머리의 의미 없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여름 휴가를 꿈꾸는 경우를 제외하면 하위권 구단들은 강등을 피하고자 시합마다 온 힘을 다한다. 승강제는 관중들의 시선을 끝까지 잡아두는 요인. ‘강등의 위협’이 인기를 유지한다. 모두가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큰 장점이다.
EPL은 자본주의 능력에 따른 대우를 받는다. 어떤 구단이든 맨 아래에서부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궁극의 능력주의. 오직 최고의 재정 역량을 가진, 가장 잘 운영되는 구만만이 살아남는 체제다.
구단들은 뛰어난 선수들을 끌어오기 위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다. 부진한 팀들은 EPL로부터 실력 향상을 위한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운동장 안에서 약한 구단을 봐주지 않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장 밖에서도 똑같은 경쟁을 해야 한다. 경쟁할 수 없는 구단들은 강등되어 큰 경제 손실을 본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예상하듯 EPL에서는 심각한 불평등이 있다. 맨체스터 시티,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 비해 몇몇 구단들은 빈곤의 덫과 비슷한 악순환에 갇혀 하위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 MLB‧NBA‧NFL, 화려한 자본주의 외관과 달리 사회주의 성격 강하다
이는 미국 프로 스포츠 체제와는 정확히 반대다. EPL이 “자본주의의 첨병”이라면 NFL·NBA 등은 “시장 경쟁의 바닷속 사회주의 섬과 같은 존재다.”
미국 스포츠는 영국처럼 ‘풍요의 문제’를 겪지 않는다. 스포츠 열기가 축구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종목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 미식축구 32개, 농구 30개, 메이저리그 야구에는 30개 구단만 있다.
스포츠마다 강력한 독점 조직이 형성돼 닫힌 체제로 운영된다. 독점 유지를 위해 그들은 “경쟁의 균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그 실현을 위해 다양한 사회주의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사회주의는 “생산·분배·교환의 수단을 공동체 전체가 소유하거나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 이론.” 이는 NFL·NBA·MLB 등 미국 프로 스포츠 사업 형태의 거의 완벽한 요약이다. 그들은 “전체의 건강·안녕”을 위해 수익과 선수를 골고루 각 구단에 나눠준다. 부자·가난한 자, 센 자·약한 자 사이에서 생기는 “경쟁의 균형·견제”를 위해서다. 다들 붙박이인 구단 사이에 강등도 없다. 그래서 미국 프로 스포츠가 세계 최고가 되었다 한다.
우선 재정 재분배. 텔레비전 중계료는 모든 구단이 고루 가진다. 상품 판매 등 개별 구단의 수익도 일정 부분 모아 다 같이 나눈다. 이 구조 덕분에 매체 시장 크기 70위인 미식축구 ‘그린 베이 패커스’가 1위 ‘뉴욕 자이언츠’와 경쟁할 수 있는 돈을 지원받는다.
여자농구(WNBA)는 돈을 잘 못 벌어 프로로 존재하기 쉽지 않다. 남자보다 연봉도 형편없이 낮다. NBA 지원으로 생존한다. 자본주의라면 당연히 없어져야 할 형편이나 사회주의 재분배 정책 때문에 버틴다.
‘연봉 총액 상한제’와 ‘부유세’는 최고 선수들을 최고 구단들이 갖지 못하도록 선수들에게 주는 돈을 제한한다. 어길 때 처벌한다. 부자구단과 가난한 구단의 차이를 좁힌다는 명분.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들은 유소년 선수들을 키우지 않는다. 신인 선발제도를 통해 대학에서 대부분 선수를 영입한다. 신인 선발 1순위는 이전 해의 꼴찌 구단에 주어진다. 패자들이 불행한 운명을 회복할 방법. 가장 못 했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큰 선수를 얻을 수 있다. “성공을 고의로 처벌하는 반면 실패를 고의로 보상하는 것이다.” 신인 선발제도는 실력 평준화 효과가 큰 “사회주의 재분배 장치” 중 하나로 꼽힌다.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색채 강한 영국과 미국 프로 스포츠의 결과는?
마르크스주의는 기회가 아닌 결과의 분배 평등에 중점을 둔다. 그것을 ’형평‘이라 한다. 신인선수 선발제는 “형평 사회주의를 상징한다.” 경쟁을 없앴다. 사실상 “식량 배급제와 같은 강제 할당.”
하지만 신인 선발제는 NBA의 가장 큰 결점으로 꼽힌다. 성적 나쁜 구단이 더 나은 순위를 얻을 확률을 높이려 일부러 져주는 현상이 생겼다. ‘고의 패배’는 경기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관중들의 돈을 낭비하게 만든다. 경기의 질을 위협하며 스포츠의 경쟁 정신을 떨어트린다. NBA에서는 거의 당연한 특징이 되었다. 사회주의의 심각한 부작용이다.
이에 비해 유럽 프로축구는 보수주의·자본주의를 따라 연봉 총액 제한 규정이 없다. 꼴찌나 그 근처 성적을 기록했다고 해서 다음의 선수 선발에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미국식 신인 선발제도가 아예 없다. 좋은 선발 순위를 얻으려 일부러 져주기는 일어날 수 없다. 저조한 성적은 바로 강등이기 때문.
제도 차이에 따른 두 대륙 스포츠의 결과는? EPL 23년 동안 47개 구단이 경쟁했다. 그중 5개(10.6%)만이 우승했다. NBA는 같은 기간 동안 30개 구단이 경쟁, 9개(30%)가 우승했다. 그래서 NBA가 “더 공정하다”는 것.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공정이지만 결과가 그러니 유럽보다 더 낫다고 한다. 억지에 가깝다.
NFL은 EPL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 EPL 2022~23년 전체 수익은 약 75억 달러. 프리미어 리그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축구 리그’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NFL은 2023년 202억 달러 수익. EPL보다 2.7배가량 많다. NBA는 113억 달러로 EPL보다 1.5배가량.
EPL 20개 구단 가운데 흑자 구단보다 적자 구단이 훨씬 많다. 미국 프로 스포츠는 적자 구단이 거의 없다. NFL은 전부 흑자. NBA는 30개 중 1개만이 적자. 사회주의 재분배가 가져다주는 편안한 공생이다.
2014년 NBA 선수노조 사무총장은 “마르크스주의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선수 가치를 강조했다. 선수들이 소유하는 리그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자(선수)이지, 자본가(구단주)가 아니다. 선수들이 없으면, 돈도 생기지. 않는다”며 NBA를 ‘노동자 소유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로버츠의 과격 구상은 일부 선수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운동장·체육관에서 혁명 사상을 전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반응. 그 영향력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구조까지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프로 스포츠의 정치성은 이처럼 뿌리 깊다. 운동은 거저 운동이 아니다. 정치이념의 산물임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 프로축구는 유럽식, 야구·농구·배구 등은 미국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의도·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 방식을 따랐는지 궁금하다.
손태규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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