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 박승환 기자] "세대 교체라는 명분 하에 어린 선수가 나간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는 지난 16일(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스타디움에서 스프링캠프 일정을 소화한 뒤 한국 취재진과 마주했다. 이날 이정후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목소리를 높인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국가대표 세대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줄곧 망신만 당하고 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최근 성과는 이 금메달이 유일하다. 지난 2017년 '안방'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은 것을 시작으로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 2023 WBC 조별리그 탈락,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도 조별리그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 우승, 초대 프리미어12 우승이라는 성과는 이제 너무나도 먼 이야기가 돼 버렸다. 점점 국제대회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 특히 이제는 치고 올라오는 대만을 상대로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문제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프리미어12의 경우엔 기량 부족이 확실하게 드러난 대회였다. 김도영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분명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다. 특히 대만의 린위민을 상대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전력 분석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이미 대표팀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린위민을 무려 두 차례나 만났었다. 상대 투수에게 철저하게 봉쇄당할 때 필요한 선수가 있다. 바로 베테랑이다.
KBO 전력강화위원회는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지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대표팀 명단을 완전히 갈아치웠다. 이 선수들이 국제대회 경험을 통해 2026년 WBC가 열릴 때에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의 단점이 있다.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지만, 반대로 팀 사기가 처질 때는 한없이 처진다는 점이다. 프리미어12는 이 부분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대회였다.
이에 이정후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후는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지금 대표팀 성적이 너무 안 좋다. 미국 선수들도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온 뒤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가 과연… 지금부터 준비를 잘 해야 될 텐데,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이건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KBO도 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선수들도 국제대회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KBO도 모든 것은 선수들에게 맡기고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최근 국제대회에서 연속적인 굴욕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대만은 롯데 자이언츠, 일본은 네덜란드(3월 예정), 호주는 한화 이글스와 맞붙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명확한 차이가 난다.
KBO에 따르면 올해 예정된 평가전은 전혀 없는 상황. 그나마 지난 17일 류지현 감독을 비롯해 강인권, 이동욱, 허삼영 전력강화위원과 전력분석담당 직원이 WBC 예선전 전력분석을 위해 대만행에 몸을 실은 것이 고작이다. 국가대표 사령탑이 각 구단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해 스프링캠프지를 찾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정후는 '세대교체'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나는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야구를 해왔다. 프리미어12 때부터 세대 교체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나는 너무 젊은 선수들로만 대표팀이 구성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를 탈 때는 확 타오르지만, 다운됐을 때에는 누군가 이끌어주지 못한다. 젊은 선수들만 있으면 분위기가 처질 때 더 처진다. 융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 생각엔 중심을 잡아 줄 선배들도, 정말 투지와 파이팅이 넘치는 어린 선수들도 필요하다. 이런 선수들이 융화가 돼야 좋은 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시즌 때도 그렇고 대표팀도 갑작스럽게 베테랑 선배님들을 다 빼버린다"며 "대표팀은 경험을 쌓으러 가는 것이 아니지 않나. 정말 그해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낸 선수들이 가서 나라를 걸고 싸우는 것인데,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낸 선배가 있음에도 세대 교체라는 명분 하에 어린 선수가 나간다"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사실 대표팀의 세대교체 이야기가 나온 것은 베테랑들로만 구성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때였다. 차라리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경험이나 쌓으라는 여론이 형성된 영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러운 세대교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 때문에 이정후도 급격한 세대교체에 아쉬운 마음과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국제대회는 무조건 '결과'로만 말을 한다. 대표팀은 못하면 비판을 받고, 잘하면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인기 종목의 경우 국제대회에 사활을 건다. 하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다.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연봉은 소속팀에서 지급하고, 국내에서의 인기는 여전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준비 과정도 썩 탄탄해 보이진 않는다. 과연 류지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달라질 수 있을까.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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