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미국 스포츠 역사에서 최고의 감독.”
스포츠 전문 방송 ESPN의 해설위원 스티븐 스미스는 험한 소리를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 그가 지난 7일 열린 여자농구 대학선수권대회에서 코네티컷대의 12번째 우승을 이끈 지노 오리엠마 감독(71)을 극찬했다:
“미식축구·농구 등에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있다. 하지만 오리엠마는 역사상 최고다. 24번 4강에 진출했다. 12번이나 우승했다. 그 성공은 40년 동안 이어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그는 여전히 그대로다.”
이 방송을 보도한 매체는 “확실히 강한 발언이지만, 반박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에서 야구 등 프로스포츠는 물론 대학 미식축구·남자농구에 비해 대학 여자농구는 그야말로 ‘마이너.’ 미국 야구의 더블A, 한국 프로축구 K3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변방의 감독 오리엠마가 “역사상 최고”며 “스포츠 전체의 ‘황금 기준’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비결은? 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의 조 마줄라 감독은 선수권대회 결승이 끝난 뒤 “오리엠마는 농구계에서 영국축구 맨체스터 시티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전술로 상대 감독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다. 최고 선수들을 관리하고 재능을 조율할 수 있다. 역대 최고 선수들이 그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들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독인지를 보여준다.”
과르디올라처럼 전술·선수 관리·농구부 운영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감독이라는 의미. 그런 오리엠마를 상징하는 한마디는 “엄격함”이다.
지도자가 선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세태. 선수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감독들이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시대다. 그러나 오리엠마는 수석코치 크리스 데일리(66)와 함께 40년 전에 세운 “코네티컷만의 문화와 방식”을 어떤 시대 변화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선수들에게 엄격하게 적용해 왔다. 자신의 방식에 적응할 것을 선수들에게 요구한다. 그 한결같음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라 한다. 그 지도 철학으로 “100년이 지나도 깨지기 어려운 숱한 기록”을 세웠다. 미국 최고 선수가 된 졸업생들은 하나같이 “엄격한 원칙·기준이 나를 더 좋은 선수,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감독·코치를 고마워한다. 미국 누구도 그들의 사고방식이 낡았다며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을 나무란다. 한국의 체육계가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
■숨 막힐 만큼 엄격한 코네티컷대 여자 농구부의 ‘승리 문화’는?
두 사람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승리 문화’를 만들지 않았다, 농구 기술만 가르치지 않았다. 운동도 잘하면서 학생다운 선수를 키우려 했다. “그것이 가능하냐?”는 사람들에게 미국 역사상 최고 농구부를 만들면서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오리엠마·데일리 남녀 조합은 코네티컷에서만 40년을 함께 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 오리엠마는 31세에 첫 감독을 맡으면서 같이 감독에 지원했던 데일리를 코치로 기용했다.
12번 우승 외에 30승 이상 무패 시즌 6번. 1,250승. 승률 88.4%. 승률은 남녀 대학·프로 통틀어 미국 1위. ‘나이 스미스 올해의 감독상’ 8번. 올림픽 우승 3번, 세계선수권대회 2번 우승 등 숱한 대기록. 가장 많은 WNBA 선수 배출. 두 사람 모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런 업적을 낳은 ‘코네티컷 문화·방식’을 보자.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소셜미디어 금지.
식사 때나 이동 버스 안 휴대전화 금지.
공항 등 공공장소 헤드폰 금지.
선수단 버스 기사 이름 외우기.
국가 연주 전 키 순서대로 줄 서기.
손톱 광택제 금지.
보이는 문신 금지.
선수복에 등 번호 외 이름 금지.
경기는 물론 연습 때도 윗도리 밖으로 내기 금지.
경기 때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 금지.
단체 외출 때 청바지, 수업 시간 운동복 금지.
연회에 갈 때 치마나 드레스 입기.
사인 요청받을 때 눈 마주치고 대화 나눈 후 사인 해 주기.
누구든 쳐다보면 인사하기.
숨 막힌다고 할 정도의 엄격한 ‘코넷티컷만의 문화’. 극한 상황까지 몰아간다는 강한 연습은 기본. 그러나 코네티컷대는 40년 동안 조금의 틈도 없이 실천해 오고 있다(휴대전화나 소셜미디어는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제한).
미국 여자 고교 농구선수는 40만여 명. 그 가운데 한해 4,800명가량이 351개 1부 대학에 간다. 해마다 36명만이 WNBA 신인 선발에 뽑힌다. 한국 스포츠 실정으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프로선수 되기는 어렵다.
매년 코네티컷 신입생 3-5명 모두 고교 1-10위 안팎. 이번 우승 주역 3명 모두 1위였다. 다들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내노라하는 선수들이 코네티컷의 강한 연습, 엄격한 규율을 다 알고 입학한다. 프로에 가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다. 강한 개성을 가진 그들도 코네티컷만의 방식·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그 길의 지름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코네티컷에서는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세밀한 규범을 지키는 태도.’ 농구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세밀한 품위 유지’다. 1학년들은 학교에 오자마자 매우 분명하고 일관된 ‘코네티컷 방식’을 접한다. 개인 취향은 일부 내려놓고 농구부 방식을 따라야 하는 환경. 서서히 적응하면서 경기장에서는 전체로서 뭉쳐 시합하고, 경기장 밖에서는 가장 학생다운 모습을 보인다.
40년 동안 코네티컷을 거친 선수들은 그 세밀함을 완전 몸에 익힌 덕에 최강 농구부를 일궜다. 올림픽 금메달 5개, 6개씩을 따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되었다.
■선수 눈치 보고, 선수 요구에 굴복하는 한국의 스포츠 지도자
미국 대학 스포츠는 끊임없이 바뀐다. 최근 변화는 충격. 대학 선수들이 광고 출연이나 자신의 이름을 건 상품을 팔아 큰돈을 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미식축구의 경우 한해 660만 달러(95억 원가량)를 번 선수가 있다.
코네티컷 우승을 이끈, 올해 최우수선수 페이지 베커스의 수입은 22억 원가량. 대학 스포츠가 워낙 인기가 높으니 선수들이 보상을 받는 것. 적자 구단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는 한국의 프로선수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변화에도 오리엠마·데일리의 원칙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미 선수들은 프로의 정신으로 뛰나 여전히 두 사람에겐 학생 선수일 뿐이다.
오리엠마는 “대학 농구가 많이 변했다. 나도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코네티컷에 오는 선수들에게 내게 맞춰 적응하라고 요구해왔다. 내가 그들에게 더 많이 맞춰주기를 기대하도록 두지 않았다. 항상 ‘여러분이 이곳에 온 것은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여러분을 수용하며 함께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은 나를 변화시키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대라도 농구는 농구고 경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베카 로보는 코네티컷 센터로 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 ESPN 해설위원: “감독은 내가 1학년 때 했던 방식 그대로 25년 후, 브리아나 등의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 훈련으로 브리아나 스튜어트는 올림픽 금메달 3개에 두 번 WNBA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스튜어트 등은 스스로 해병대 교관을 초청해 1주일간 새벽 훈련을 했다. 그런 정신자세 덕에 4연속 우승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은 국가대표 선수들까지도 해병대 극기훈련, 와이파이 제한, 새벽 훈련이 요즘 세대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이를 사회가 부추긴다. 탁구 선수 출신 김택수 진천선수촌 새 촌장도 엉거주춤한 자세. 철학도 소신도 없어 보인다. 프로는 물론 학교 운동부에서도 선수들이 힘든 훈련과 통제를 싫어하고 지도자들이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선수 눈치 보고, 선수 요구에 굴복하는 지도자. “세상 흐름이라 어쩔 수 없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다”고 변명하는 지도자. 자신들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지도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꼰대’라고 욕하는 선수. 모두들 엄격한 기준·원칙을 꼬박 40년 지켜 온 오리엠마·데일리를 보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합리성 부족한 고집을 한탄하는 말. 그러나 두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바뀌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었다.
한국 체육의 모든 선수·지도자·관계자들은 코네티컷대 성공 신화를 만든 오리엠마·데일리의 선수와 인간을 함께 만드는 엄격한 지도 철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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