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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감독들이 일본 축구 J1 우승을 다투고 있다. 김명휘 감독(43)이 이끄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는 1위, 조귀재 감독(56)의 ‘교토 상가’는 2위다. 두 감독은 두 구단 역사상 J1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며 새 역사를 만들고 있다.
두 구단은 시즌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함께 꼴찌를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에 이르며 유력한 우승 후보로도 떠올랐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적만으로도 일본인들과 매체들은 두 감독의 지도력에 칭찬을 쏟아낸다. 두 사람 모두 모진 시련을 겪고 재기했다. 그러기에 더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
칼럼 ‘힘내라! 재일동포 J1 감독...’<2월 28일자>은 “두 사람 모두 쉽게 꺾이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 남은 대기록들을 남겼던 재일동포 선배 야구선수들처럼 ‘한국인의 투혼’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다. 정상에 설 것”이라고 적었다. 아직 속단은 이르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재일동포의 역사, 일본 축구의 역사가 되었다.
두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다. ‘재일동포.’ 그러나 두 사람은 대한민국 국적을 지키고 있다. 일본 이름도 없다. 한국 이름 ‘김명휘(金明輝)’ ‘조귀재(曹貴裁)’를 한국 발음 그대로 부른다. 그 모두가 참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
재일동포 가운데는 끝까지 한국적으로 살면서 한국 성·이름을 그대로 간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대부분 발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일본식으로 바꾼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귀화하면 법에 따라 무조건 일본 성을 가져야 한다. 세계 유명 기업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孫政義) 회장은 사업 때문에 귀화했다. 그러나 반드시 ‘손’을 지키고 싶었다. 묘책은 일본인 부인에게 성을 바꾸도록 한 것. 그리곤 부인 성을 따랐다. ‘손정의’란 본명을 간직할 수 있었다. 눈물겨운 조국 사랑. 그런 그도 발음만큼은 ‘손 마사요시.’ 일본에서 살려면 그래야 했다. 재일동포의 삶은 그만큼 쓰라리다. 모국 동포가 함부로 ‘반쪽발이’라고 부르는 것은 재일동포들 가슴에 대못 박는 일이다.
오로지 한국을 고집하는 김명휘·조귀재 감독이 얼마나 깊은 모국 사랑과 강단 있는 정신력을 가졌는지를 이런 예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일본의 오랜 축구 애호가들은 다 기억한다. ‘후쿠오카’·‘교토’ 모두 약체의 대명사. 두 구단은 1996년 처음 J리그에 참가한 '동기'였다. 그러나 늘 밑바닥에서 함께 머물렀다. 첫해는 꼴찌와 바로 위였다. 그리고 30년. “현재 순위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 김명휘의 야심찬 포부…“리그 우승과 함께 리그컵 우승도 목표”
김명휘 감독의 ‘후쿠오카’는 12일 ‘요코하마’에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3연승. 최근 7경기 6승 1무. 치고 올라가는 힘이 무섭다. “후쿠오카 회오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정도. 리그 10회전을 마치면서 구단 역사 처음으로 선두에 올랐다. 지난해 입단한 김문현(23) 선수가 뛰고 있다. 그는 당시 K5에서 J1로 바로 가 관심을 모았다.
‘후쿠오카’는 J1에서 7위가 최고 성적. 우승은 23년 J리그컵이 유일하다. 그동안 16시즌이나 J2에서 보냈다. 거의 붙박이로 2부에 머물다 가끔 1부에 오르기도 해 ‘엘리베이터 클럽’이라는 야유를 받던 역사를 가졌다. 이제 김 감독 체제로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명문 구단을 꿈꾼다.
그러나 김 감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승패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감독 선임에 달갑지 않은 반응이 있었다. 개막 3연패란 어려움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리그 우승 이외에 “J리그컵 우승도 목표”라 했다. 16일 ‘도치기’를 2대1로 꺾으면서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후쿠오카는 재일동포 손정의가 구단주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인기가 휩쓰는 지역. 그래서 시민들은 “‘아비스파’는 자금력도 없다.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없다. 그러나 감독의 지도력과 잠재력이 큰 선수들로 부자 구단에 맞서는 모습은 멋있다. 계속 슈팅을 날리는 공격 축구 최고다. 재미 있다”고 칭찬한다.
김명휘는 ‘사간 도스’ 등의 감독 시절 선수들을 거칠게 다뤘다는 이유로 지도자 자격이 강등되며 감독에서도 물러났던 아픔을 겪었다. 이후 다른 구단에서 코치를 맡으며 재기를 노리다 올 시즌부터 후쿠오카를 이끌게 되었다.
이에 일부 서포터들이 반대했다. 지역 명란 제조업체는 김명휘 선임에 항의, 후원 계약을 끊었다. 가난한 구단으로서는 큰 아픔.
이제 시민들은 “김명휘 감독이 뛰어난 게 드러났다. 명장의 냄새가 풀풀 난다. 감독 취임을 비판했던 시민들은 손바닥을 뒤집었을 것”이라고 칭찬한다. 특히 “이 상황에서 ‘후쿠야’는 정말 곤란할 거야. 객관 분석 능력이 없음을 입증했다”는 등 명란 회사에 대한 조롱 섞인 비판을 한다.
■ 호평 받는 조귀재…“집념‧겸허함으로 구단의 새로운 문 연다”
2위는 교토 구단이 생긴 이래 최고 순위. 지난해 12승 11무 15패로 14위. 3년 연속 J1 잔류는 조 감독이 이뤄낸 구단 신기록이었다. 교토에는 한국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구성윤이 있다.
교토는 16일 ‘우라와’ 원정 시합에서 이기면 처음으로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2대1로 지고 말았다. 6경기 만에 지면서 기세가 약간 꺾였다.
평소 냉정한 평가로 유명한 조 감독은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선수들도, 나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순위를 우연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반대로 2위라 해서 훈련 강도를 조절할 생각도 없다. 순위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원정 ‘가시마’전에서 승리했다. 상대의 안방 무패 기록을 ‘27’에서 끊은 것이다. 교토는 리그컵에서도 J2 ‘야마가타’를 꺾고 3회전에 나갔다. 이 경기에서 지난해 한국에서 건너간 18세 미드필더 윤성준 선수도 프로 데뷔를 했다. 조 감독은 “나이는 상관없다. 좋은 선수는 기용한다”며 더욱 치열해질 경쟁을 이겨야 할 윤성준에게 기대를 걸었다.
조 감독은 “1위가 되더라도, 되지 않더라도 훈련이나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열정은 변함없다. 지난해 이맘쯤 꼴찌였다. 그 상황을 알고 있기에 눈앞의 일을 확실히 해내야 한다. 그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들뜨지 않는다. 자만도 없다.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하나 하나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겸허함으로 구단의 새로운 문을 연다”는 평을 듣는다. 서포터들도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감독,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6년 전 그 역시 직장 내 괴롭힘을 했다는 의혹 조사 끝에 견책 처분과 함께 5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쇼난’ 감독직을 떠났다. 그러나 구단 대표는 조귀재가 “사람을 키우는 능력과 사람에게 동기를 주는 인간성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할 정도로 지도역량은 뛰어났다.
조귀재는 21년 교토를 맡아 12년 동안이나 J2에서 헤매던 교토 재건에 성공했다. 취임 1년 만에 J2 최저 실점 기록을 세우며 1부 승격을 이끌었다. 교토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구단. 박지성·고종수·최용수·이정수·곽태휘·정우영·김남일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었다.
김명휘·조귀재 두 감독은 재일동포에다 철저히 무명 프로선수였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처지. 그런데도 일본 최고 축구 리그에서 두 번이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이제 우승을 다투는 최고의 프로감독 반열에 들어섰다. 그들에게 무슨 든든한 배경이 있었겠는가? 우연도 정실도 아니었다. 오로지 ‘실력’ 때문.
한국축구도 국가대표든 프로구단이든 오직 실력만으로 감독이 발탁되는 풍토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래야 멀찌감치 앞서가는 일본 축구를 하루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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