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아이가 한 시간 넘는 분노발작 끝에 픽 잠들었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뒤, 이제는 더 태울 것이 없어서 불길이 꺼져버리듯. 나도 그 화마에 타버려 잿가루처럼 부서져 있었다.
“아이가 많이 졸렸나 보다. 다른 애들도 잠투정은 심하단다.” 시어머니께서 조용히 다가와 나를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저는….” 며칠간 참았던 눈물이 시어머니 앞에서 터졌다. “그 말이…정말 싫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목 놓아 울었다.
그 말. “다른 애들도 다 그래.” 사람들이 나를 위로할 때 종종 하는 말이다. 그냥 조금 예민할 뿐이라고. 크면 다 나아진다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위로한다. 빈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미래를 낙관하며 하는 말이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나를 위로하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 선해서 나는 목까지 차올라 넘쳐버릴 것 같은 감정을 꾹꾹 삼킨다.
아닌데, 아닌데. 아이가 웬만큼 징징대고 울어서 이러는 게 아닌데. 내가 조금 힘들다고 이러는 게 아닌데. 그 위로가 내 슬픔과 고통을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나를 눌러버린다.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내겐 매 순간 뛰어넘기를 도전해야 할 높은 허들인 걸. 단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할 정도로 전쟁을 겪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때로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심하게 분노발작을 일으켜서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하면, 그 이유가 남들 보기엔 너무 사소한 일 때문이거나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할 때면, 아무도 아이를 달래지 못할 때면, 내심 속으로 씁쓸한 해방감을 느낀다. '거 봐.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 했잖아. 이제 할 말 없지?'
그러면서도 전혀 홀가분하지 않은 건, 이 난장판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내 슬픔과 고통이 가벼운 취급을 받는 건 외롭지만, 그게 생생히 목격되는 일은 수치스럽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다 네가 감당할 만한 사람이니까 이 아이를 네게 주신 거야.” 엄마는 이런 위로를 건넸다.
‘아뇨, 저는 감당하지 못하겠는데요.’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싶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네게 주신 뜻이 있을 거야.” 언니는 이렇게 위로했다. ‘아니, 난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그저 하루하루 매 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부자리에 누워 남편에게 그간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시어머니 위로에 반기를 들며 운 것과 선한 친구들 위로에 지치는 속마음을.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와 언니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남편이 한동안 말이 없다. 그래서 무슨 생각하냐고 물으니,
“음, 나도 한번 생각해보고 있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아이를 주신 이유가 뭘까.”
“그래서?” 남편이 무슨 결론을 내렸을까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 이유가 있다면 그건…행복하라고. 아이가 행복하라고.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 같아.”
나는 좀 기가 막혀서 피식 웃었다.
“여보, 행복해?”
“응, 행복해.”
“하아, 좋겠네. 당신이야 아침저녁에 잠깐만 보니까 감당할 만하겠지.”
나는 비아냥거리며 돌아누웠다.
그래도 그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곧 솔솔 잠이 왔다. 내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이들과 가족의 기도 때문인지도. “미안하다”며 내 등을 쓸어주시던 시어머니의 손길 때문인지도.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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