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늘어나는 HBM 수요…SK하이닉스, TC본더 이원화 가속하나
SK하닉, 해외 장비사와 협력 가능성도…공급망 변화 여부 '주목'
[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동체'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달 한미반도체로부터 독점 공급받던 열 압착(TC) 본더를 경쟁사인 한화세미텍 장비를 주문하면서다.
SK하이닉스는 HBM 수요에 적기 대응한다는 전략 아래 공급망 다변화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한미반도체와의 갈등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업계 전반에 공급망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한화세미텍과 10대 안팎(420억원 규모)의 HBM용 TC본더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시장 주류이자 HBM 5세대인 'HBM3E 12단' 제조 공정에 한미반도체 장비를 전량 사용해왔지만 한화세미텍을 신규 협력사로 삼고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공급망 다각화를 꾀하면서 TC본더 공급처를 싱가포르 ASMPT와 한화세미텍(옛 한화정밀기계)으로 넓힌 상황이다.
TC본더는 고온과 압력을 통해 D램을 웨이퍼 기판에 수직 적층하는 장비다. 반도체 패키징 공정의 필수 장비 중 하나로, 메모리 수율과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용처가 HBM이다. 그동안 HBM 시장의 글로벌 1위인 SK하이닉스에 한미반도체가 TC본더를 독점 공급해 왔다.
하지만 최근 경쟁사인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독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8년간 장비 가격을 동결하며 '동맹' 관계 유지에 힘써온 한미반도체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 납품하기로 한 TC본더 가격이 한미반도체보다 28% 가량 높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 HBM 생산 현장에서 자사 TC본더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를 철수시키는 초강수를 두자 양사 간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한미반도체가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제기한 TC본더 특허권 침해 소송 등 두 회사 간 갈등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기술 유출 및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도 나선 상황이다. 2021년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에서는 1·2심 모두 승소했고, 지난해 12월에는 특허 침해 소송에 착수했다.
결국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최근 인천에 위치한 한미반도체 본사를 찾아 양사간 협력 관계 회복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반도체 엔지니어들의 복귀와 장비 구매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 HBM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가 늘어나는 HBM 수요에 적기 대응하려면 관련 장비 공급사의 이원화는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일부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HBM 공동체' 균열을 예상하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한미반도체의 협력설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미반도체는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와 특허침해 소송 이후 10년 동안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기 등 일부 삼성 계열사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관계 개선 여지가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와의 갈등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TC본더를 포함한 각종 장비·기술 협력에도 나설 수 있다. 양사 협력은 2023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HBM 시장에 국내 업체를 중심으로 공급사가 다변화되면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강화될 뿐 아니라 추가 고객사 확보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SK하이닉스는 특정 업체를 배제하거나 택하는 방식이 아닌 기존 업체와 파트너십을 유지한 채 새로운 업체와의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반도체는 당초 이달 22일 예정됐던 국내 주요 기관 투자가 대상의 기업설명(IR) 행사를 올해 1분기 확정 실적이 발표되는 5월15일 이후로 연기한 상황이다. 이 자리에서 1분기 경영현황과 중장기 전망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받을 계획이었으나 SK하이닉스와 TC본더 공급 문제로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IR을 진행할 경우 고객사나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신규 TC본더 장비 발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4일 SK하이닉스 1분기 실적발표에서 TC본더 장비 공급 및 협상 상황에 대한 언급이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황효원 기자 woniii@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