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교사 김혜인] 집 앞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가 다시 만나는 곳이 있다. 한쪽은 평탄하게 뻗었고 다른 쪽은 내리막으로 가다가 계단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각각 윗길, 아랫길로 부른다.
한번은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아랫길로 내려가고, 할머니는 윗길에 있었다. 나는 함께 걸으며 아이가 할머니를 찾아 보게 했다. 아이는 윗길을 올려다보며 아주 재미있어 했다. 특히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재회하는 게 더욱 신나는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할머니와 셋이서는 괜찮았는데, 나와 아이만 나섰을 때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지난번처럼 윗길과 아랫길로 나뉘어 가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는 윗길"이라 말하고 자기는 아랫길로 향했다.
그런데 아랫길로 가는 내리막에서 아이는 주춤거렸다. 그간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을 갈 때면 내가 손잡이를 잡아서 속도를 늦춰 줬는데, 저 혼자서 가려니 무서운 듯했다.
아이는 킥보드를 잡아 달라는 듯이 "엄마" 하고 나를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내가 다가가면 나를 윗길로 밀었다. 아이는 나를 불렀다가 밀었다가를 반복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린다. 양립할 수 없는 요구라고 설명해 보았지만, 엄마가 여기 있는 동시에 저기 있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는데, 그 실랑이가 30분 넘게 이어지니 점차 지쳐 갔다.
먼저 함께 아랫길로 가자고 설득했다.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함께 윗길로 가자고 설득했다. 역시 통하지 않았다.
그럼 혼자 아랫길로 가라고 응원해 줬다. 아이가 내게 팔을 뻗어도 다가가지 않고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이가 오랫동안 징징대더니 급기야 "오줌 쌌어" 하면서 울었다.
아이고야, 이놈의 윗길-아랫길!
일단 이 길에서 벗어나야겠다고 판단했다. 아이가 난리를 쳐도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아이가 스스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손을 잡아끌기보다 등을 밀어서 길 반대편으로 나왔다.
시간을 확인하니 밖으로 나온 지 1시간 가까이 이 실랑이를 했다. 그래도 갈림길에서 빠져 나와서 다행이라 여겼다.
공중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아주자 아이 마음도 그곳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듯했다. 이제 즐거운 야외 활동이 되겠구나 했는데, 2차전이 시작됐다.
아이가 뛰는 듯 걷다가 "발 불편해" 하며 멈췄다.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벗기니 작은 솔잎 한 개가 신발에 들어가 있었다. 신발을 털고 "이제 괜찮지?" 하며 다시 신겼다.
그런데 몇 걸음 걷다가 또 "발 불편해" 했다. 반대편 신발을 벗겼다.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탈탈 털어주었다.
그러나 잠깐 걷다가 다시 시작되는 "발 불편해" 타령. 발 한쪽 당 스무 번은 족히 신발을 벗었다 신기를 반복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 양말까지 벗겨서 털어보기로 했다.
양말을 벗길 때, 이미 아이에게 질 것이 뻔했다. 바짓단 아래로 드러나는 아이의 말랑하고 뽀얀 발. 땀이 났는지 살짝 촉촉한 그 발이 너무나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요 발 정말 귀여워!"
양말 속에도 발바닥에도 아무 티끌조차 없었다. 내게 안기고 싶지도 않고, 걷고 싶지도 않은 걸 반복하며 집으로 돌아갈 일이 얼마나 험난할지 예상됐다. 그래도 발바닥이 귀여우니까 됐지.
이 느리고 까다로운 녀석을 어떻게 키우나, 환장할 노릇이다 싶으면서도 아이가 귀여워서, 그래서 봐준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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