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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사투리 매일 썼더니 이제는 화나면 사투리 나와"
[마이데일리 = 함태수 기자] 화려한 캐스팅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조금은 씁쓸하게 막을 내린 KBS 2TV 수목드라마 '도망자 Plan.B'. 드라마는 끝났지만 주연배우 못지않게 유명세를 치른 감초 연기자들이 있다.
성동일의 '미친 존재감'과 더불어 도망자에는, 지우(정지훈 분)를 번번이 눈앞에서 놓치며 큰 웃음을 선사한 형사 3인방이 있었다. 김형사(김형종 분), 이형사(정승교 분), 박형사(김수현 분), 이들은 매 장면마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이며 도망자의 유머를 담당했다.
물론 배우가 사람을 웃기는 게 쉬울 리는 없다. 데뷔한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얼굴을 알린 작품은 사실상 도망자가 처음인 김수현은 더욱 그랬다.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가 UCLA의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엘리트 김수현은 유머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했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형사들의 등장신에서는 무조건 '빵' 터져야 했죠. 매번 우리가 짜온 걸 감독님께 보여줘야 하는데, 가장 선배인 김형종 씨의 방에서 이것저것 많이 연습했습니다. 물론 써먹지 못하고 그냥 넘긴 적도 한두번이 아니죠."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 만큼이나 사투리 역시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영어에 익숙한 김수현이 맡은 박형사는 호감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입만 열면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말 그대로 '좀 깨는' 캐릭터였다.
"드라마에서 '내 이럴 줄 알았슈'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사투리는 충남 서산 사람인 친한 형에게 배웠는데, 거의 3-4개월 동안 밥 먹고 차 마시고 쫓아다니면서 그 형을 흉내 냈습니다. 술 마실 때도 일부로 사투리를 썼더니 이제는 진짜 화나도 '왜 그랴' 하는 사투리가 튀어 나올 정도예요."
"비 톱스타 답지 않게 친절, 그래도 나한테 발차기는 안돼"
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우슈, 소림권 등 종합 4단의 유단자인 김수현은 도망자 4회에서 비와 절묘한 액션신을 선보였다. 당시 그의 발찍기, 다리찢기는 비의 화려하고 자연스러운 몸짓만큼이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발찍기 신은 제가 짠 거예요. 비 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재밌을 거 같아서 '이렇게 하자'고 제안 하니 비 씨가 바로 OK 하더군요. 감독님은 좀 머뭇거리셨는데 비 씨가 '이거 재밌다‘고 ’가자‘ 하더군요. 그냥 주먹 몇 번 주고 받다가 끝났을 촬영이 그래도 비 씨때문에 발차기도 나오고 발찍기도 나오게 됐습니다."
그래서일까. 김수현은 비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캐스팅의 비화도 좀 들어봤다. 김수현은 도망자를 찍기 전 SBS 드라마 ‘나쁜 남자’에서 극중 오연수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디가드 역할로 출연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도망자’에서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형사 역을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도망자’의 감독님 작가들과는 드라마 ‘추노’에서 인연이 있어요. ‘추노’ 오디션에서 저의 액션신을 눈여겨 본 감독님이 ‘도망자’에 불러준 거죠.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박형사가 액션은 소화하면서 충남 사투리 쓰고 흥분하면 영어 쓰고, 입만 열면 깨고…딱 수현이 너 캐릭터다’라고 하시더군요.”
"성동일과의 만남 잊을 수 없어, 성동일 같은 배우 되고파"
어쩌면 운이 좋게, 또 어쩌면 우여곡절 끝에 '도망자'에 출연하게 된 김수현은 잊을 수 없는 선배를 만났다. 중고 신인 김수현에게는 까마득한 대선배이지만, 그 선배는 김수현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충고를 해줬다.
“성동일 선배를 만난 건 제겐 너무 큰 행운입니다. 드라마를 하면서 제일 친해졌는데 정말 코드가 잘 맞았어요. 정말 성동일 선배처럼 겸손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제게 충고를 해주셨는데 ‘맘 편이 먹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라’고 하시더군요. 또 ‘연기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혼자 달려가는 게 아니다’라고도 해주셨고요.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성동일과의 만남은 10년 차 중고신인 김수현에게 새로운 연기관을 선사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김수현은 성동일처럼 ‘미친 배우’라는 소리 듣고 싶다고 했다. 인지도야 있으면 좋겠지만 ‘슈퍼 스타’ 말고 ‘슈퍼 배우’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저는 앞으로 정말 연예인이기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털털한 배우 말이죠. 연예인 같지 않은 그런 배우가 꼭 될겁니다.”
연기자로서 최종 목표도 들어봤다. 김수현의 커다란 눈 속에는 연기에 대한 욕망과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김수현.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함태수 기자 ht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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