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우리 작가들은 변해가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임해규(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아 2011년 9월 18일에 공개한 전국 345개 대학 도서관의 2011년 상반기 대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대학 도서관에서 인기를 끈 책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책은 무려 52개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 1위를 차지했다. 2-4위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50곳),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24곳),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15곳) 등이 차지했다. 2011년에도 여전히 일본소설이 강세였음이 나타났다.
2011년 9월 5일 발행된 '교수신문' 614호가 2011년 3월부터 8월까지 경희대, 고려대, 서울대, 중앙대, 한양대 등 5개 대학 도서관의 대출현황을 분석한 자료에서도 '1Q84' 뿐만 아니라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등 하루키 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기사의 중간제목은 "판타지 및 일본소설은 쨍쨍, 교양도서는 먹구름. 통속소설과 일본소설의 약진 앞에 인문학적 교양서적은 설 자리를 잃었다"다. 이 기사에는 '일류(日流)'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일류’란 대학생들이 일본소설에 빠져있는 현상을 말한다.
2000년대 내내 지속된 일류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일류’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오 등은 왜 그렇게 인기를 끌까? 간단한 정답은 한국의 작가들이 우리 독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 간 독재정권의 압박을 받아왔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자 문학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자 했다. 1980년대만 해도 문학은 ‘역사성’을 최고의 화두로 삼았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형식적 민주화라도 이뤄지자 문학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 여성 인기 작가들이 쓴 소설들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거나 ‘후일담’(과거를 되돌아보는) 문학이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에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생산물은 ‘개인’이라는 상품이었다. 신자유주의화, IMF, 문민3대정부의 탄생 등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끼얹었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극단적으로 개인주의로 빠져드는 독자들의 관심에 부응하는 소설을 써낼 수가 없었다. 그 틈을 일본소설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6-1950년생)는 타고난 근면성과 기술력으로 경제번영을 이뤄왔으며 ‘총중류사회’를 추구해왔다. ‘총중류사회’론은 ‘일본적 경영’론과 한 쌍을 이룬다.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회사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그리고 집단주의에 물든 일본식 경영의 ‘회사형 인간’을 필요로 했다.
‘회사’와 ‘일’이라면 만사형통한다는 발상에 빠져들었던 회사형 인간은 자신밖에 모른다. 더구나 회사에서 기계(컴퓨터)만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기가 쉽지 않다. 옆집 부엌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 있는지를 훤히 알고 지낸 우리 정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전차남'이라는 소설을 한 번 보자. 22세 청년은 전철에서 취객에게 희롱당하는 여성을 도와주었다. 연애경험이 전무한 이 청년은 이후 구해준 여성으로부터 에르메스 찻잔을 선물 받으면서 연애를 시작하지만 어쩔 줄 모른다.
고민하던 그는 '2채널'이라는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에 도움을 청한다. “식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하나요?” 등 그의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답글을 단다. 게시판을 장식한 내용 그대로 책을 펴내자 '전차남'은 곧바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사카이 후유키의'이과계 남성의 개인생활'('IT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수록)을 읽으면 이런 결과를 낳은 일본인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이과계 남성은 그들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줄 모른단다. 그런 그들이 타자와의 교감을 소설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소설을 오랫동안 번역해온 이는 그래서 일본소설은 '엿보기 문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평론가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소설의 주인공은 대체로 독신이거나 룸메이트와 동거를 한다. 전문직 여성도 있고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프리터도 있다. 그들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독립적 사고를 하는 쿨한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흥미로운 캐릭터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풍요로운 일상 속에서 뭔지 모를 상실감을 느끼는 젊은 여성들에게 ‘관계의 쓸쓸함’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한다. 아무리 칙칙하고 어두운 소재라도 말갛게 그려내는 섬세한 문체와 분위기,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몽환적 분위기나 상상력, 일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 등이 장점이다.
이런 소설들에서 삶의 진지함이란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저 아련한 추억 등 가벼운 일상만을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영화화된 가타야마 교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이치카와 다쿠지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애인이나 가족만이 등장하는 등 극도로 축소된 인간관계만을 다루고 있다. 세상의 변화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중시한다.
이런 소설을 역사성이나 집단을 중시하던 소설을 읽고 자란 우리 작가들이 잘 써내기가 쉽지 않다. 한 마디로 우리 작가들은 변해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일류’는 갈수록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우리 젊은이들의 정서변화가 만들어낸 흐름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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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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