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마이데일리 = 강지훈 기자] 페미니스트 웹진 '이프'의 공동대표 유숙열(59)씨가 '내게 팬티를 사 준 남자, 이근안에게'라는 편지글을 지난 17일 이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글은 유씨가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던 지난 1980년 7월 17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에 끌려가 이씨에게 고문 당했던 일을 회상한 내용이다. 유씨는 5·18 계엄확대 발표 이후 지명수배로 쫓기고 있던 당시 한국기자협회장 김태홍 전 의원에게 피신처를 소개한 혐의로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유씨는 "나는 솔직히 사람 하나 숨긴 것이 무슨 그리 큰 죄이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뭐 그런 생각이었다"면서 "처음에는 담담했다"고 했지만 이씨를 만나면서 담담함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30, 40대의 건장한 남자 여러 명이 몽둥이를 들고 둥글게 모여 있었고, 가운데는 칠성판이 놓여 있었다"는 유씨는 "누군가 내게 칠성판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나는 그 위에 올라가 본능적으로 몸을 엎드렸다. 그러자 다시 누군가 돌아누우라 했고 돌아누운 내 몸 위에 버클이 주루룩 채워지며 육중한 몸집의 남자가 올라탔다"고 했다. 바로 이씨였다.
그는 "얼굴 위로 수건이 덮어 씌워졌고 다음 순간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고문 한 번 당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한여름인데도, 온몸이 물에 젖어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담요를 여러 장 뒤집어 써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며 "그 때 경험한 추위는 실내온도와 전혀 무관한 추위였다. 가장 괴로웠던 일은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유씨가 계속되는 고문으로 초죽음 상태가 되자 수사관들은 군의관을 데려와 링거를 맞게 했다고. 그 때 유씨에 난감한 일이 벌어졌는데 다름아닌 때 이른 생리가 시작된 것.
유씨는 자신을 고문한 이씨에게 "아저씨, 저 생리가 터졌는데요"라고 말했고 이씨는 유씨에게 속옷과 생리대를 사다주고는 동료들 앞에서 "내가 생전 여자 속옷을 사봤어야지. 가게 가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냐?"며 그 사실을 무용담 털어놓듯 말했다고 한다. 모진 고문 끝에 유씨는 20일 후 기소유예로 석방됐고, 합동통신에서 해직됐다.
유씨는 이씨가 목사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썼다며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들었던 고문기술자가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목사직을 내놓으라"면서 "남들이 당신을 목사직에서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그리고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청소부가 되어 묵묵하게 자신의 죄를 씻고 또 씻으라"고 말했다.
유씨가 웹진에 글을 올린 바로 다음날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총회는 이씨에 대해 목사직 면직 결정을 내렸다.
[사진 = '이프' 홈페이지 캡처]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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