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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스타★필]
모든 스포츠에는 나이별 정점(頂點)이 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연 섭리 상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찍은 후 하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마라톤 만은 예외다. 42.195km를 쉼 없이 달리는 마라톤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유리할 것 같은데, 정작 신기록을 내는 유명 선수들은 30대 초중반이다. 힘과 지구력, 경험과 정신력이 필요하므로 중·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다 30대가 되어서야 마라톤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 김명민의 행보도 마라톤과 비슷하다. 1996년 SBS 6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명민은 20대 내내 긴 무명기를 거쳐 32살이 되던 2005년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으로 그 해 KBS 연기대상을 받은 후 계속 승승장구하며 2007년 '하얀거탑',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연기본좌', '메소드 연기 1인자'라는 극찬을 받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김명민은 유난히 자신을 고단하게 연기하는 배우다. 혹독하리만큼 캐릭터와 일체화시키는 그는 2009년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촬영 당시 실제 루게릭병 환자처럼 보이기 위해 4개월 만에 20kg을 무리하게 감량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병의 진행 속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말라야 하기에 촬영 막바지에는 아예 곡기를 끊어 건강에 무리가 올 정도였다.
그리고 최근 그때만큼 비쩍 마른 앙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 속 퇴물 마라토너 주만호로 스크린에 등장한 것이다. '페이스 메이커'란 기록 경기에서 우승이 확실한 선수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그림자 선수로 주만호는 선천성 기형으로 쓸쓸히 퇴장한 마라토너로 비루한 몸만큼이나 벌어지고 돌출된 앞니, 어눌한 발음까지 외관상 루저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30km만 뛰었던 주민호가 생애 최초로 자신을 위해 42.195km 완주에 도전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다.
극 중 인물과 철저히 동일시하며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김명민은 이번 촬영에서 온종일 뛰며 실제 마라톤 선수와 흡사한 날렵한 몸과 말 근육 허벅지를 갖게 됐다. 발음, 말투, 목소리까지 철저하게 계산하여 주민호에 완전히 동화되었고, 투박한 외관과 다른 섬세한 내면연기를 펼쳐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마라토너는 오직 몸 하나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극복하며 완주해야 하는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이 배우이라는 일과 흡사하다. 특히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한 주만호처럼 그도 2002년 '스턴트맨'이란 영화를 찍으며 다쳤던 과거가 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인물에 빙의 될 정도로 혼연일체 하는 김명민은 마라토너처럼 매 작품 전력 질주하며 최선을 넘어선 최고를 만들어왔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시나리오의 진정성이라는 김명민. 배우 15 년차에도 매일 아침 볼펜을 물고 대사 연습을 하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스트레스로 역류성 식도염 시달릴 만큼 배우의 삶에 몰입하고 있다. 정신보다 몸이 더 정직하고, 세상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불멸의 김명민의 연기거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사진 = 영화 '페이스메이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위로부터)]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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