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f(x)의 18살 소녀이자 소녀시대 제시카의 동생 크리스탈은 차갑거나 당돌한 이미지였다. 그래서 인터뷰를 위해 일산 MBC로 향하는 동안 걱정이 앞섰다.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 촬영 때문에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걸, 겨우 잠깐 틈을 내 만나게 된 자리인데, 혹시 쉴 시간을 빼앗았다고 불쾌한 티를 내지는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터뷰 동안 몇 번이나 크리스탈에게 '정말 평소에도 이러나요?'라고 물었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크리스탈의 이미지와 인터뷰를 하며 수줍은 목소리로 얼굴을 붉히는 크리스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얼마나 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크리스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이킥3' 속 안수정과 크리스탈, 즉 정수정은 다른 사람 같았다. "비슷한 점도 있는데, 안수정처럼 왈가닥이진 않아요. 안수정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쉽게 말 걸고, 접근해서 '우리 사귀자'고 확 말하기도 하잖아요. 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렇게 못하거든요. 정말 오랫동안 만나고, 많이 친해져야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어요. 표현도 잘 못하고. 이런 스타일이에요. 정수정은…"
"의외인데요?"라고 하자 크리스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래요?"라고 되물었다. 그제서야 TV 화면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던 크리스탈의 얼굴과 표정이었다. 톡 쏘는 듯한 말투, 누군가는 '건방져 보인다'고까지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 크리스탈은 속상했던 날들도 있었단다.
어린 나이에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이 꽤나 마음에 버거웠던 크리스탈이었다. "안수정 캐릭터로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면을 보여주는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갈수록 안수정이 격해지는 거에요. 저 역시 보고 당황한 적도 있었어요.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안수정 성격이 제 성격과 똑같다는 말도 너무 많이 듣고, 상처가 됐어요. 그래서 한 번은 대본에 적힌 것보다 절제해서 연기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수정아, 약하게 하면 에너지가 없어'라고 해서 원래대로 강하게 하니까 비로소 OK 사인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러면 사람들한테서 그런 얘기가 또 나올텐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하이킥3' 김병욱 감독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감독님한테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안수정이 좀 착해졌으면 좋겠다고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같은 말씀이셨어요. '네가 다 잘해서 그런 거야. 캐릭터일 뿐이고, 널 아는 사람들 다 아니까 인터넷 댓글들 보지 말고'"
크리스탈은 솔직했다. 굳이 감추지 않는 게 아니라, 감추는 법을 잘 몰랐다. 연예인들의 얼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짜 웃음, 속마음과 다른 말과 표정. 크리스탈은 없었다. 오해를 샀던 건 이 때문이었나 보다.
진짜 크리스탈, 정수정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평소의 안수정만큼 심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극 중에서 청순한 척 연기했던 안수정만큼 여성스러운 건 또 아니에요. 그냥 거짓말 하는 거 싫어하고 그래요. 사람들이 저보고 얼굴에 속마음이 다 드러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저도 이제는 많이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크리스탈은 '하이킥3' 안수정이 오빠 안종석에게 자주 쓰는 말 "스튜핏!"이 유행어가 돼서 기분 좋지 않냐고 했을 때,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뇨. 전 그거 그만하고 싶어요. 안 좋은 거잖아요. '스튜핏!'을 초등학생들이 따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엄청 충격이었어요. '스튜핏!', '멍청아!', '닥쳐' 다 안 좋은 말이잖아요"
평소에 그런 말 써본 적 없냐고 물었더니 "저요? '닥쳐' 이런 말 안 해요. 그런 말을 알긴 알죠.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초등학생들도 다 알걸요. 그런데 쓰면 안 되잖아요. 안 써야죠!"라고 말했다. 미간에 힘을 잔뜩 준 채 이런 순진한 말을 하는 걸 보니 크리스탈을 오해해도 한참 오해했다.
"왜 연기를 연기로만 안 봐주실까요?"라던 크리스탈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죠?"라고 하자 크리스탈은 "처음에는 속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주는 분들도 있고, 여전히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전 진짜 그런 마음이 아니거든요? 음… 진짜 모르겠어요"라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나 어떡해. 얼굴 빨개진 것 같아"라며 발그레한 얼굴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날 수 있을까 싶었다.
크리스탈에 대한 편견은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크리스탈에게 결코 거짓이나 가식은 없었다. 연예인으로서 쉽지 않은 성격일 수도 있다. 늘 웃는 얼굴로 있어야 하는 연예인이 가짜 웃음을 잘 못 짓는다는 건. 그래도 인기를 얻으려고 솔직하지 못한 거짓말을 늘어 놓는 연예인보다 가면 없는 크리스탈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직접 만나 본 크리스탈. 연예인답지 않게 착하고 순진했다.
크리스탈이 말하는 f(x)의 음악 이야기는 ②편으로 계속.
[크리스탈. 사진 = 마이데일리DB-MBC 방송화면]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