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몇 가지 '당연한' 사실들이 있다. 야구에서 가장 선수가 포진해 있는 포지션은 단연 투수다. 그리고 우완투수가 좌완투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모든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또 마무리 투수에 대한 이미지로는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바탕으로 한 힘으로 상대타자를 제압하는 것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동안 SK에는 이 '당연한' 사실들이 현실로 이뤄진 경우가 많지 않았다. 올시즌 엄정욱의 마무리 투수 낙점이 흥미로운 이유다.
▲ 엄정욱, 지난 시즌 막판 이어 SK 마무리로 낙점
엄정욱은 그동안 강속구로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150km 중반대 공을 연이어 뿌리며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정작 2000년 데뷔 이후 강속구를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데뷔 초기에는 제구력 난조로 인해, 그 이후에는 부상에 발목 잡히며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그는 예전 '와일드씽'이란 별명에 걸맞은 강력한 모습을 선보였다. 최고구속은 예전에 비해 5km 가량 떨어졌지만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제구력을 품에 안았다. 제구가 어느 정도되는 150km를 던지는 투수는 거칠 것이 없었다. 강속구-포크볼 조합으로 상대 타자를 연이어 돌려 세웠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엄정욱은 구원으로 등판한 13이닝동안 평균자책점 1.38을 기록했다. WHIP(이닝당 출루허용수)은 단 0.46에 불과했으며 18개의 삼진을 잡는동안 볼넷은 2개만을 내줬다. 삼진 못지 않게 볼넷도 많았던 예전의 엄정욱과는 전혀 달랐다. 덕분에 짧은 기간동안 6세이브를 올렸다.
올시즌에도 SK의 마무리 투수는 엄정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몸 상태. 엄정욱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오른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 실전 등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만수 감독은 "엄정욱이 개막전에 나서기를 희망한다"며 "못 돌아오면 정우람이 마무리, 박희수가 셋업맨을 할 것이다"라는 구상을 내놨다.
▲ 엄정욱, SK 첫 우완 파이어볼러 마무리 투수 꿈꾼다
엄정욱의 마무리 낙점은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팀내 마무리 역사를 보더라도 흥미를 자아낸다. 흔히 '마무리 투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강속구를 갖춘 국내 우완 마무리 투수'가 그동안 SK에는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조건에 대부분 2% 부족했다.
지난해 팀내 세이브 1위는 지난 몇 년간 SK 불펜의 핵이었던 정대현(롯데)이었다. 지난해 정대현은 16세이브를 거뒀다. 이는 지난 몇 년간 다르지 않았다. 2010년에만 좌완 이승호(롯데)가 20세이브로 팀내 세이브 1위를 기록했을 뿐 2007, 2008, 2009시즌 1위 역시 정대현의 몫이었다. 이승호는 신인이던 2000년에도 9세이브로 1위에 올랐다.
이는 정대현이 마무리 투수를 맡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간계투의 대명사'로 알려진 조웅천 SK 코치도 2001, 2003, 2005년까지 세 차례나 팀내 세이브 1위에 올랐다. SK가 창단 이후 치른 12시즌 중 절반이 넘는 7시즌에 잠수함 투수가 팀내 세이브 1위였다.
물론 우완 정통파가 세이브 1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2시즌 채병용이 11세이브로 팀내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채병용은 당시에도 강속구가 아닌 묵직한 직구와 과감한 몸쪽 승부로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었다. 강속구 우완투수가 두 차례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는 국내 투수가 아닌 외국인 호세 카브레라(2004, 2006)였다.
엄정욱은 그동안 다른 선수들이 갖추지 못한 흔히 떠올리는 마무리 투수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가 지난 시즌 막판 여세를 몰아 올시즌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할 수 있을 지 관심이 간다. 만약 이 감독의 구상이 맞아 떨어진다면 SK는 지난 몇 년간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불펜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SK 엄정욱]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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