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러해야 한다. 그것은 같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최종태 감독의 영화 '해로'는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래야 한다는 미켈란 젤로의 말과 함께 시작한다. 이는 영화 '해로'를 설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말이기도 하다.
'해로'는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부부 민호(주현 분)와 희정(예수정 분)이 죽음이라는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와 함께 점점 다가오는 이별 앞에 다시 찾아 온 기적같은 사랑을 담아낸 영화다.
민호와 희정은 평범한 부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을 습관처럼 여겼던 노부부는 우리네 부모와 비슷하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우리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다.
민호는 어느날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다행히 당장 위기는 넘겼지만 언제 다시 위험해질 지 모르는 상황. 민호는 희정에게 그 사실을 숨긴 채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아내를 위해 변모해 간다. 하지만 갑자기 쓰러진 희정 역시 췌장암으로 2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선고받게 되고, 두 사람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부부의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 간다.
영화는 세심한 시선으로 두 사람의 변화를 쫓아간다. 민호는 아내에게 꽃을 선물해 본 적 없냐는 꽃집 주인의 말에 "미쳤냐. 쓰레기를 선물로 주고받게. 그것도 다발로"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이내 아픈 아내를 위해 수줍게 꽃다발을 들고 병실을 방문하는 자상한 남편으로 변해간다. 아내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심장병에 독이나 다름 없는 담배에 다시 손을 대기도 한다.
이런 변화들은 영화 속에서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화려한 극적 재미는 없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행동과 대사들은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이는 마력같은 힘을 발휘한다.
여기에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공공의 적' 시리즈, '이끼' 등을 촬영한 김성복 촬영감독과 '비몽', '영화는 영화다', '네버엔딩 스토리' 등을 작업한 이현주 미술감독이 따뜻하면서도 감성적인 화면을 완성해 냈다. 또 '접속', '클래식', '올드보이', '박쥐', '의뢰인',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에서 주옥같은 영화음악을 선보인 조영욱 음악감독이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을 편곡해 서정적 느낌을 완성시켰다.
민호가 쓰러지는 신,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드는 신,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신, 부부가 나란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신 등에선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에 미소짓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해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필란드 소설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가 원작이다. 국내에서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의 제목으로 출간됐다. 연기경력 도합 70년인 주현과 예수정의 명품 연기로 재탄생된 소설의 감동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사진 = '해로' 포스터(위), 스틸컷(아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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