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세상만사에 지쳐있을 때 세상을 향해 쏜 총알을 잠시 날아가게 두면 알아서 명중할 것"이라는 뜻의 영화 '양자탄비'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중국식 웨스턴으로 중국영화 사상 최초로 박스오피스 1억달러를 돌파하여 역대 중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90세가 넘은 사천성 작가 마식도의 소설 '야담십기' 중 군벌시대 이야기가 원작인 이 영화는 '붉은 수수밭'의 남주인공으로 익히 알려진 중국 6세대 대표 감독 장원의 2010년도 작품으로 뒤늦게 국내에서 개봉되는 중국 최고의 흥행작이다.
장원은 문혁의 뒤안길을 다룬 1994년도 작품 '햇빛 쏟아지던 날들'로 감독으로 데뷔하여 연출력을 입증하였고 항일 전쟁 시기 산동성 민초의 생존기를 다룬 '귀신이 온다'로 2000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1950-60년대의 중국모습을 담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2007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오른 그는 난해하다는 평을 들었던 전작과 달리 중국식 웨스턴을 표방한 '양자탄비'로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각인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흥행요소는 장원과 주윤발 그리고 갈우, 중국을 대표하는 세 국민배우의 여유로우면서도 노련한 열연에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걸작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를 패러디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중국판이라고 알려진 이 영화의 포인트는 세 명의 나쁜 놈들이 펼치는 입담과 속고 속이는 두뇌싸움으로 청산유수처럼 흐르는 대사의 묘미에 있다. 그런 만큼 통쾌하면서도 장렬한 액션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그렇다고 유치한 말장난으로 억지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 액션극으로 단정하기엔 이르다. 장원이 누구인가? 묵직한 메시지와 자신의 특기인 블랙코미디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감독이 아닌가?
청왕조 멸망 후, 중화민국이 성립되고 난 1920년대의 중국, 돈을 주고 마을의 현장 자리를 산 마방덕(갈우 분)이 부인(유가령 분)을 데리고 호위병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부임지로 향하던 중 장곰보(장원 분)가 이끄는 마적떼의 습격을 받아 호위병들은 모두 즉사하고 마방덕과 부인 둘만이 목숨을 건지게 된다. 마방덕은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자신을 현장의 비서인 탕비서라고 속이고 현장으로 부임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들은 장곰보는 수하의 부하들을 데리고 중앙정부의 법률이 미치지 않는 외진 고을인 아성에 마방덕 대신 가짜 현장으로 부임한다. 아성은 지역 맹주인 황사랑(주윤발)의 통제하에 있었고 장곰보는 인신매매와 마약상을 하는 황사랑과 마을의 이권을 놓고 대결을 벌이기 시작한다.
통쾌한 액션 속에 유머와 해학적인 풍자를 각인시켜 결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완급을 조절하며 1920년 중국의 격동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재미는 세 인물들의 머리싸움이다.
군벌과 손잡은 악덕 지역유지 황사랑과 관직을 사서 백성을 수탈하려는 관리인 마방덕, 그리고 17세 때 군관학교를 졸업하였지만 군벌의 다툼으로 강호를 떠돌다 마적이 된 장곰보, 이들의 말과 행동은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 진실인지, 진짜 그들은 누구인지? 진짜 마방덕은 탕비서라 속이고 장곰보는 마방덕이라 속이며 심지어 황사랑은 자신과 똑같은 짝퉁인 가짜 황사랑을 자신으로 속여 음모와 계략을 펼친다. 마적패와 똑같은 가면으로 변장하여 장곰보를 죽이려는 가짜 마적들과 가면을 쓴 진짜 마적패들의 구분할 수 없는 대결 장면은 물론, 20분 동안 펼쳐지는 장곰보와 황사랑의 마지막 대치 장면은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상황으로 극적 재미와 반전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정점이다. 특히 황사랑을 제거하는데 백성들을 합류시키려던 장곰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직전, 백성들을 의기투합하게 해 주는 것도 가짜가 진짜가 되는 상황에 의해서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숨겨진 계략을 통해 심리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고 중국 무협물의 포인트인 남성간의 의리를 장곰보의 마적단을 통해 부각시킨다.
'초한지'에서의 항우와 유방의 관계, 중국고사를 인용한 대사와 상황들, 마작패를 이용한 마적패들의 가면, 6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손가락 모양의 묘비 등, 이 영화의 바탕에 깔려있는 중국역사와 문화, 그리고 관습들은 중국인들에겐 박장대소할 장치들로 이영화의 격을 높여주는 동시에 가장 중국적인 웨스턴으로 차별성을 보여준다.
특히 대사가 아닌 입으로 피리를 불며 마적 형제끼리 피리소리로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가 자막으로 처리되어 코믹하면서도 경쾌한 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이채롭다. 그리고 황사랑의 무예교관이 재기대신 사람으로 재기차기하는 액션 씬과 장곰보의 6번째 양아들 육제가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기 위해 배를 가르는 장면, 아성의 아낙네들이 성문 앞에서 북을 치는 장면들은 중국 무협영화를 연상시키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장원의 남성다운 면모와 기개, 주윤발의 능글맞으면서도 능수능란한 악역 연기, 찌질하면서도 번뜩이는 재치와 진지함으로 웃음과 감동을 자아내는 갈우, 명배우들의 매력과 연기만으로도 두근거리게 하는 이 영화는 시대적인 상황과 중국문화를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대형화면으로 볼 가치가 있다.
마치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을 연상시키는 백마들이 끄는 기차가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백마가 끄는 기차가 달려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신세대들인 젊은 형제들이 탄 그 기차를 말을 타고 따라가는 구세대인 장목지를 통해 세대가 바뀌고 세상은 변하지만 "세상을 향해 쏜 총알을 잠시 날아가게 두면 알아서 명중할 것"이라는 '양자탄비'의 뜻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사진 = '양자탄비' 포스터, 스틸컷]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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