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제6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유럽영화상과 2011독일비평가협회상 7개 부문 수상, 저먼 필름 어워즈 2개 부문 수상, 2010 트라이베카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장편영화상 수상 및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5개 부문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그녀가 떠날 때(DIE FREMDE)'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관습인 '명예살인(名譽殺人, honor killing)'을 소재로 전통적인 관습 때문에 억압받는 터키여성의 갈등과 비극을 그린 영화다.
'명예살인'은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 이슬람권에서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 또는 간통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온 관습으로 남편 등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해당 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살해한 가족은 붙잡혀도 가벼운 처벌만 받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다.
요르단 정부에서는 명예살인을 한 사람에게 사형 등 중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률을 개정하고 명예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는 법조항도 삭제하였지만 아직도 이슬람권에서는 한 해에 수백 명의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죽어 간다고 한다.
터키는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2005년부터 명예살인을 무기징역 등의 강력한 법조항으로 다스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자국 내 명예살인은 무려 1천 건을 넘었고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강력한 법적 조치가 적용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가족이 자살을 부추긴다고 한다.
왜곡된 종교관과 엄격한 가부장제에서 탄생한 명예살인의 오랜 관습은 터키인이 유독 많은 독일에서도 종종 발생해서 독일 사회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그런 만큼 "가족과 사회의 억압에서 벗어나려했던 여성들과 가족에게 희생당하는 터키계 독일여성들을 접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라는 페오 알라다그의 연출의도는 이 영화의 핵심을 각인시킨다. 새로운 삶을 위한 용기있는 선택을 한 여주인공의 좌절과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종교관습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사회적으로 구제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아픔을 상징한다.
이스탄불로 시집간 터키계 독일 여성 우마이(시벨 케킬리 분)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환멸을 느껴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 어린 아들 챔(니잠 실러 분)을 데리고 이스탄불을 떠나 독일의 친정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우마이를 반기던 가족들은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고 독일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그녀의 결심에 반대한다. 이슬람 율법이 정한 전통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은 친정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우마이를 이해하지만 시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우아미를 설득한다.
그녀의 완강한 선택으로 전통적 가치와 그녀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가족들은 우마이의 아들 챔을 이스탄불로 돌려 보내려하고 우마이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나 자립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우아미 때문에 가족들은 곤경에 처한다. 여동생은 언니가 시집에서 도망왔다는 이유로 파혼당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남자 형제들도 동료들과 친지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비난을 받고 소외당한다.
반면 이혼 여성을 돕는 쉼터에 자리를 마련한 우마이는 일자리도 얻고 학업을 시작하면서 희망을 갖게 되고 언젠가는 가족들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받아줄 것이라 굳게 믿지만 그녀를 집안의 수치이자 모욕으로 여기는 가족들의 단죄로 그녀의 희망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절망으로 바뀐다.
한 청년이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여자의 얼굴에 권총을 들이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강인한 터키 여성과 자신들의 체면과 공동체의 시선 때문에 그녀와 반목할 수 밖에 없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란 무엇인지 새삼 곱씹게 한다.
이 영화에서 가족은 용서와 화해, 사랑이 넘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끊을 수 없는 결박과 구속, 갈등의 요소로 부각된다. 오히려 그녀를 돕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보호시설에서 만난 사람과 직장상사, 친구다. 그런 만큼 소통과 화해를 시도하지만 전통적인 관습 때문에 좌절을 겪는 여주인공 우마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가족의 사랑은 주변의 시선과 자신들의 체면 때문에 그녀를 거부하는 가족의 고뇌와 상통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데뷔작인 여성감독 페오 알라다그의 섬세하면서도 진중한 연출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억압받는 우마이의 입장과 그녀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의 입장을 동등하게 보여줌으로서 민족과 종교, 문화적 편견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여 가슴 아픈 감동을 주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특히 여동생 결혼식에서 가족으로 받아들여달라는 우마이의 가슴 아픈 절규와 종교적 규율에 얽매어 사랑하는 딸을 밀어낸 우마이 부모의 한숨과 눈물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원제가 '이방인'인 이 영화의 국내 제목 '그녀가 떠날 때'는 일순 멜로영화를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를 보면 적절한 제목이라 수긍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우마이는 다섯 번 떠난다. 첫 번째 그녀가 이스탄불을 떠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두 번째 그녀가 친정집을 떠나는 건 절망속의 새로운 홀로서기다. 세 번째 그녀가 오빠를 피해 보호시설을 떠나는 건 좌절이며 위기다. 네 번째 친구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는 것은 희망의 시작이다. 다섯 번째 그녀가 떠나는 곳은 아무도 모르는 절망의 끝이다.
한 청년이 권총을 들이대던 오프닝 씬이 라스트 씬으로 연계되면서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꽃은 단연 우마이 역으로 압도적인 열연을 펼친 시벨 케킬리이다.
2004년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독일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여우주연상, 촬영상을 수상한 그의 첫 영화 '미치고 싶을 때'로 일약 유명세를 떨쳤던 시벨 케킬리는 실제로 터키계 독일인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은 내가 자란 무슬림 가정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는 그의 말처럼 우마이의 고통과 아픔을 실감나게 연기하여 저먼필름어워즈, 독일비평가협회상 등 세계의 권위 있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 8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뜨겁게 가슴을 울리고 아프게 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영화! 우리 모두는 이 영화를 봐야 한다!" - Waris Dirie
[사진 = '그녀가 떠날 때' 포스터, 스틸컷]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