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시계 바늘을 1997년으로 돌려보자. 해태는 날이 갈수록 재정이 악화됐다. 정말 건드리지 않고 싶었던 이종범의 물이 오른 기량을 눈물을 머금고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태는 일본 주니치에 이적료를 받고 이종범을 넘겨야 할 정도로 사정이 절박했다.
그러나 당시 해태는 정과 의리가 있었다. 이종범이 주니치로 이적할 당시 양자는 돌아올 경우 '반드시 해태'라는 규정을 넣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3년 반 뒤 이종범이 광주로 돌아왔을 때 해태는 KIA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타이거즈는 타이거즈였다. KIA는 이종범에게 3억 5천만원, 당시 프로스포츠 최고 연봉을 안기며 이종범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물론 이종범은 8월에 복귀하는 바람에 규정상 실제로 1억 5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KIA는 보전의 의미로 승용차까지 제공했다고 한다.
10년 6개월이 지났다. 지금도 타이거즈는 타이거즈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 타이거즈 수뇌부 및 코칭스태프는 다르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조금은 석연치 않게 이종범이 은퇴를 선언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타이거즈와 이종범은 서로 뜨거운 눈물을 삼킬 것이다. 하지만, 15년 전 첫 이별은 타이거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이종범에게 더 아쉬운 상황으로 180도 바뀌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은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누구든 떠날 때는 아쉽기 마련이다. 15년전 이종범이 타이거즈와 첫번째로 이별할 때는 그야말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연인의 마음이었다면, 작금의 이별은 누구도 미련이 없을 수 없다는 선수 생활의 은퇴다. 하물며 그 대상이 한국야구에 특별한 한 획을 그은 이종범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종범이 이렇게 타이거즈와 두번째 이별을 한다는 건, 첫번째 이별 당시 다시 타이거즈로 돌아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종범과 KIA는 두번째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아직 이종범은 향후 거취를 확정하지 못했다. 현 KIA의 상황을 봤을 때 이종범은 갑작스러운 은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KIA도 마찬가지다. 정규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이종범의 거취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려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KIA는 코치 연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은퇴식이나 은퇴경기 개최 여부 및 방식, 영구 결번 선정 등에 대한 진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히 아직 이종범과 KIA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코치 연수는 곧, KIA로의 복귀가 예상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100% 확실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종범이 코치 연수를 거부하고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이종범이라는 거물이 다시 KIA에 돌아올 경우 강력한 친정 체제를 구축한 선동열-이순철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일단, 이종범의 말을 들어보는 게 우선이다. KIA는 이종범에게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할 것이다. 이종범이 지난 19년간 타이거즈에 남긴 유, 무형의 산물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나아가 이종범과 KIA가 두번째 재회를 할 수 있을지 여부는, 되도록 이종범이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마저도 KIA가 가타부타한다면, 광주 팬들과 이종범은 KIA에 너무나도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
[이종범. 사진=마이데일리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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