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광주 김진성 기자] “아, 내 그래도 선 감독님한테 홈런 두개 쳤었데이.”
10일 광주구장. KIA와의 시즌 첫 경기가 일찌감치 우천 취소되면서 삼성 류중일 감독은 원정 감독실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일찌감치 수비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인근 실내연습장으로 자리를 옮겨 타격훈련을 하러 갔기 때문에 따라간 코치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때마침 감독실 TV에서는 옛 레전드 야구 선수들의 현역 시절 경기 장면이 한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KIA 선동열 감독과 고인이 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 장효조 전 삼성 2군 코치 등의 경기 장면이 차례로 나오고 있었다.
류 감독은 “캬, 진짜 유연하다”라며 선 감독의 전성기 시절 투구폼에 감탄했다. 직접 스로잉을 하는 시범을 보이면서 “팔 길지, 다리 길지. 몸 유연하지. 투수가 갖춰야 할 조건은 다 갖췄었다”라고 선 감독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어 장효조 전 2군 코치를 보고서는 “너무 빨리 가셨어”라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류 감독은 “저것 봐라. 효조 형이 살이 퉁퉁했다니까. 작년 여름인가. 갑자기 노인네처럼 가슴 부분에 살이 쫙 빠졌더라고. 그래서 ‘어디 편찮으십니까’라고 여쭤봤는데, 아 글쎄 병원에 예약을 해놨다고 하시더라고”라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장 전 코치와의 기억을 더듬었다. 류 감독은 “동원이 형도 너무 빨리 가셨고. 너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류 감독도 위에 언급된 레전드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야구 팬들의 추억 속에 훌륭한 선수로 남아있다. 류 감독은 경북고 시절부터 재치 있는 유격수로 유명세를 탔고,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에도 철통 같은 수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타격이 썩 강하지 않았다는 게 2% 부족한 점.
하지만, 류 감독은“예전에 선 감독님을 감독으로 모실 때 내가 홈런 쳤었다고 예기를 했었는데 못 믿으시더라고”라고 말했다. 이어 류 감독은“선 감독님한테 대구에서 하나, 광주에서 하나 홈런 쳤었데이”라고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만루홈런을 친 다음날 류 감독은 내심 자신이 신문 1면에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류 감독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다음날 신문에 대략 이렇게 실렸기 때문이란다.
“아니, 류중일이는 안중에도 없고 신문 1면에 ‘선동열, 방심했나?’이래 실리는 기라.깔깔깔깔.”
그 순간 기자들은 당연히 폭소 도가니가 됐다. 류 감독은 레전드들을 추억하면서도 자신이 한국야구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었던 KIA 선 감독에게 홈런을 친 걸 여전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었고, 아울러 떠나간 레전드들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류중일 감독. 사진=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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