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광주 김진성 기자] 슬라이드스텝, 과연 투구보다 중요한 것일까.
삼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2010년 메이저리그 10승 투수 출신 미치 탈보트를 야심차게 영입했다. 에이스감으로 여겼던 탈보트는 그러나 개막전에 나서지 못한 채 12일 광주 KIA전에 선발 등판했다. 시범경기서 2승을 거두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퀵 모션이 느리다는 평가 속에 연이어 도루를 내주며 주자견제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12일 광주 KIA전서 정규시즌 데뷔를 한 탈보트는 6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2실점의 수준급 피칭을 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1회 솔로포를 맞은 뒤 3회, 4회, 6회에 주자를 루상에 내보냈지만, 6회 1실점을 했을 뿐 3회와 4회는 모두 내야 땅볼을 유도해 KIA 타선을 잠재웠다. 낮게 들어오면서 휘는 서클체인지업과 투심패스트볼의 위력이 돋보였다. 투심은 최대 144km까지 나왔지만, 서클체인지업은 129km가 최고 구속이었다. KIA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이 흐려지기에 충분한 구속 차였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게 있다. 이날 KIA 타자들이 전혀 도루를 시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탈보트는 시범경기서 연이어 도루를 허용하며 주자 견제에 문제를 드러냈다. 실제 슬라이드 스텝(유주자 시 와인드업을 하지 않고 공을 던지는 시간) 시간이 2초가량 됐다. 그러나 이날 3회와 4회에 그의 슬라이드 스텝은 확실히 2초는 되지 않았다. 물론 최근에는 늦어도 1.5초는 돼야 주자를 묶을 수 있다. 분명 이날 탈보트가 이 정도의 빠른 슬라이드 스텝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KIA 타자들이 뛸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날 KIA 발 빠른 타자들은 거의 출루를 하지 못했다. 4회 1사 1,2루 상황에서의 주자는 최희섭과 나지완으로 도루와는 거리가 있는 선수들이었다. 더구나 승부 자체도 일찌감치 삼성으로 기울어졌다. KIA가 뛰는 야구를 하기엔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날 탈보트가 도루를 허용하지 않은 걸 두고 슬라이드 스텝의 약점을 벗어 던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이날 3회 김선빈을 볼넷으로 내보내긴 했다. 이때 탈보트는 세트 포지션에서 축발인 왼다리가 홈으로 향하는 가운데 1루 견제구를 던져 보크 판정을 받긴 했지만, 점수 차가 5점으로 벌어져 있어 김선빈이 딱히 리드를 길게 가져간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탈보트가 발 빠른 김선빈을 의식해 보크를 범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보크를 범한 뒤에도 탈보트는 김선빈을 묶어냈고, 후속 타자들을 내야 땅볼을 유도하며 이닝을 마쳤다.
하지만 탈보트는 이날 주자를 내보낸 뒤 지저분한 변화구로 범타를 유도했다는 건 KIA 주자들이 도루를 한번쯤 시도할 수도 있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탈보트는 이날 직구를 45개만 던졌다. 90개의 투구 중 절반이었다. 변화구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포수가 볼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이고, KIA 주자들에게 뛸 수 있는 빌미를 주는 것과도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투수들에게 빠른 슬라이드 스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용병 투수들은 탈보트처럼 슬라이드 스텝에 강점을 보이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 구위가 좋은데다 슬라이드스텝이 빠른 완벽에 가까운 용병 투수가 한국에 올 리 만무하다. 중요한 건 슬라이드 스텝이 느려도 좋은 성적을 거둔 용병 투수가 많았고, 국내 투수들 중에서도 좋은 구위를 갖고 있는 선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와인드업으로 몸의 중심을 완벽하게 뒤로 넘겼다가 정확한 중심이동으로 볼을 뿌리는 것보다 세트포지션에서 간결한 폼으로 공을 던지는 게 당연히 제구력도 부정확하고 볼 끝 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빠른 슬라이드 스텝을 보유한 투수들은 주자 견제에는 강점이 있지만, 그만큼 구위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자를 묶는 건, 타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 없다. 주자를 묶지 못해 실점을 하는 건 홈스틸뿐이다. 그러나 홈스틸은 그리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주자보다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할 경우 결국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날 탈보트가 바로 그랬다. KIA가 뛰는 야구를 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탈보트는 주변의 우려에 개의치 않고 슬라이드 스텝이 다소 느린 대신 변화구의 위력으로 승부를 걸어 데뷔전서 승리를 따냈다. 주자견제보다, 타자와의 승부가 더욱 중요함을 알게 해준 경기였다. 탈보트는 이날 투수의 상대는 주자가 아니라 타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확실히, 국내 무대는 슬라이드 스텝의 중요성이 과장돼 있다. 경기 후 “시범경기는 투구 밸런스를 잡기 위한 연습의 무대였고, 오늘은 내 실력을 보여준 무대였다”는 탈보트의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했다.
[힘차게 투구하는 탈보트(위)와 도루를 시도하는 이용규(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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