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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WKBL(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이 어마어마한 시험대에 오른다.
지난 13일 터진 '신세계발 쇼크'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유통 대기업 신세계가 이날 오후 1시 WKBL 김원길 총재에게 해체를 '통보'했다. 그나마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리기 1시간 전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것이다. WKBL은 날벼락을 맞았다. 말 한마디로 신세계는 쿨하게 여자농구에서 발을 뺐다. 이제 뒷수습은 WKBL의 몫이다.
하지만 체육계가 WKBL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현재 WKBL은 김원길 총재의 퇴임이 눈앞에 있고, 이명호 사무국장도 이달 말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미 전무이사 없이 지난 시즌을 근근이 치러온 WKBL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껏 WKBL이 변변하고 깔끔하게 행정 처리를 해온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WKBL이 신세계 해체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할 것인지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신세계는 유통 업계를 꽉 잡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자금난으로 해체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거대 조직이 하루아침에 농구단을 접은 건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다. 물론 어떠한 이유에서든 구단 해체는 농구 발전을 저해하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WKBL은 신세계가 왜 그런 작태를 벌였는지를 분석해봐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신세계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신세계는 금융권 위주의 리그 운영에 싫증을 느꼈다고 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금융, 보험권 5개 구단 중 일부 구단은 그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선수 트레이드, FA 시장 등에서 어마어마한 뒷돈을 주고받으며 선수 수급 시장을 농락해온 게 정설이다. 신세계는 샐러리캡과 선수 영입 규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WKBL에, 그리고 법원에 수차례 규정을 지키지 않는 구단들의 행태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억울한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세계의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WKBL이 그간 각 회원사가 리그 운영에 무슨 불만이 있는지 몰랐다면, 혹은 알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그건 곧 WKBL이 리그 운영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휘둘려왔다는 걸 뜻한다.
물론 구단과 선수, 구간과 구단간의 돈 거래라는 게 구단 회계 감사를 벌이지 않는 한 WKBL이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회원사들이 혹시 모를 불법 혹은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조율하며, 그들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히 WKBL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제껏 WKBL은 그런 모습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회원사들이 보이지 않게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 사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 몰라라 해온 게 사실이다.
조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고위 간부들의 업무 추진력이 2% 부족하다면, 부하 직원들의 업무 역량도 2% 부족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위 인사들도 갖가지 이유로 퇴임하거나 퇴임 직전이다. 따지고 보면, 신세계가 하루아침에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지른 것도 결국 WKBL이 힘이 없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WKBL이 그간 똑 부러지게 업무 조율 능력을 발휘하고, 각 구단 고위층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비즈니스 마인드로 똘똘 뭉쳐 있는 신세계 고위 간부들이 이런 결정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신세계도 신세계지만, WKBL도 이번 사태가 일어난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
신세계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구단 해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그간의 울분을 제대로 터뜨리고 떠났다. 그 울분의 의미가 당위성이 있든 없든,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건 분명 회원사들의 입장을 조율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WKBL에 책임이 있다.
이미 소는 우리를 떠났다. 그래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지금이라도 고쳐놓지 않으면, 신세계와 같이 마지못해 여자농구에 봉사하는 심정으로 구단 운영을 해온 금융권 팀들도 언제 하나, 둘 떠날지 모른다. 여자농구의 청사진이 다 빛바랜 뒤 울어보면 뭐하는가. WKBL은 자성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 바짝 차려서 이번 사태 수습에 임해야 한다. 나아가 지금이라도 한국여자농구 발전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분명한 방향타를 제시해야 한다. WKBL의 행보에 여자농구의 미래가 달렸다. 지금 한국여자농구는, 태동 100년만에 죽기 일보 직전이다.
[WKBL 회의 모습.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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