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참으로 묘하다.
시계추를 2010년 3월 30일로 돌려보자. 두산은 목동 넥센전을 치렀다. 폭죽같이 홈런 2개를 쳐내고 김선우의 무실점 승리를 이끈 포수는 최승환도, 용덕한도 아닌 양의지였다. 양의지는 당시 넘버 쓰리 포수였다. 그러나 그 경기가 전임 김경문 감독의 뇌리에 남아 추가로 몇 차례 기회를 얻었고, 그때마다 불꽃타격과 안정적인 투수 리드를 뽐내며 주전 안방 마님이 됐다. 1인자와 2인자의 부상 혹은 부진으로 기회를 잡은 3인자가 1인자가 된 순간이다.
2년이 흘렀다. 18일 잠실 삼성전. 양의지 바로 뒤에서 주전 자리를 위협하는 용덕한은 2군에 내려갔다. 심지어 최승환은 2차 드래프트로 한화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만큼 지난 2년간 양의지의 팀내 위치는 차돌처럼 단단해졌다. 하지만, 17일 경기서 왼쪽 종아리에 부상을 입은 양의지가 1~2경기 정도 쉬어야 한다기에 그저 이름만 1군에 올라와 있거니 라고 여겼던 포수가 데뷔 첫 선발 출장을 했다. 이날 역시 그는 공격에서 삼성 선발 윤성환의 커브를 노려 결승타를 쳤고, 수비에서는 선발 이용찬의 6이닝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게다가 9회초 2사 2루 위기에서 손주인을 견제사한 것도 그의 어깨에서 나온 송구덕분이었다.
가수 최재훈이 아니다. 두산 포수 최재훈(23)이다. 2008년 신고선수로 입단해 그해 6월 곧바로 정식선수 계약을 맺었으나 두산의 두터운 포수진을 뚫지 못했다. 입단 후 채상병, 최승환이 버티고 있었고 2년 먼저 입단한 양의지는 그가 경찰청에 입대한 2010년부터 신데렐라 스토리를 쓰며 성장했다. 때문에 최재훈은 입단 후 5년간 철저히 주변인물로 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힌 것이다.
그러나 이날 강렬한 활약으로 두산 포수진에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2년 전 양의지가 주전을 꿰찼던 것처럼 말이다. 따지고 보면 두산 포수 경쟁의 역사가 말해준다. 양의지가 주전을 맡기 전 두산 포수진은 채상병과 최승환이 주전을 양분하고 있었다. 물론 채상병이 2009시즌 도중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면서 최승환과 용덕한의 구도가 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채상병과 최승환도 2006년까지는 빛을 보지 못했다. 롯데에 있는 홍성흔이 안방마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홍성흔의 케이스는 실력이 아닌 지명타자로 돌아서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낄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만, 유독 두산 주전 포수는 다른 팀에 비해 경쟁이 심했고 교체도 잦았다.
역사만 생각한다면, 최재훈에게도 희망이 있는 셈이다. 바로 2년 선배 양의지도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살려 야구인생의 꽃을 피웠다. 그에게 18일 잠실 삼성전도 2년 전 양의지가 그랬던 것처럼 야구인생의 꽃이 피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양의지는 앞으로도 1~2일 정도 경기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가운데 용덕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원이고 김재환도 있다. 그러나 최재훈도 꾸준히 경기 출장만 한다면, 실력이 좋아질 게 확실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땀흘린 자를 기억하는 김진욱 감독이다.
화수분 야구를 주창하는 두산에 또 한 명의 화수분이 나타났다. 나중에 최재훈이 야구 선수로 성공한다면, 2012년 4월 18일이 매우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양의지가 2010년 3월 30일을 잊지 못하듯 말이다.
[깜짝 등장한 최재훈의 경찰청 시절.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