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마이데일리 = 최지예 기자] "이건 정확히 해두게. 보청기는 들리지 않는 사람이 들리도록 하는 기구지만 동시에 입력되는 수 많은 소리 중에서 들어야 하는 소리를 잘 듣게 해주는 장치라네"
만일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참으로 적막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청기를 달지 않고서도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는 보청기 사업으로 성공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없는 봉달수 회장의 이야기다.
주인공 봉달수는 무일푼이지만 타고난 손재주과 집념, 아내의 지극한 헌신으로 사업에 성공해 여러 계열의 기업을 일궈낸 최고경영자다.
연극은 봉달수가 한 차례 병을 앓고 난 후,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려고 자서전 집필을 위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이 삽입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상대방의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안아무인격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두 주인공의 연기는 소통할 줄 모르며 귀가 닫혀 있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봉달수가 고백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는 고막이 손상돼 들을 수 없던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지독한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관객들에 역설한다.
또 그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소아마비를 앓던 주인집 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아내의 헌신과 깊은 사랑으로 BMS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었던 과정들을 추억한다.
하지만 높은 사회적 지위를 거머쥐자 구부정하게 걷는 아내의 모습을 품어주지 못하고 포장하려고만 들었던 자신과 마주한다.
봉달수는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오랜시간 아내의 본연을 외면한 자신이 그녀를 자살로 치닫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순수하게 사랑했던 대상과도 소통하지 못했던 과거를 처절하게 깨닫는다.
주인공의 방치됐던 과거는 신소정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에 문을 두드리고 그는 과거의 자아와 만남을 가지면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와 사랑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연극은 봉달수와 신소정에게 타인을 향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보청기'를 달아주며 막을 내린다.
'인물실록 봉달수'는 관객들로 하여금 '무관심'이라는 단어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주지한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진다.
연극인 주호성이 연출하고 김태수 작가가 집필한 '인물실록 봉달수'는 오는 29일까지 서울시 중구 한화손보 세실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 스틸컷. 사진 = '인물실록 봉달수' 제공]
최지예 기자 olivia731@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