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질투와 매혹으로 뒤얽힌 세 사람의 숨겨진 도발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다. 질투와 매혹으로 뒤얽힌 세 사람의 숨겨진 도발!

은교(김고은 분)는 싱그러운 관능의 열일곱 소녀이다.

그 소녀는 위대한 노 시인인 이적요(박해일 분)를 동경하고 시인 이적요는 소녀의 싱그러운 젊음과 관능에 매혹 당한다. 그리고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는 스승인 이적요의 천재적인 재능을 존경하면서도 질투한다.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다. 질투와 매혹으로 뒤얽힌 세 사람의 숨겨진 도발!”이라는 선전문구가 자극을 주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영화 '은교'는 박해일이 70대 시인을 연기하고 신인배우인 김고은이 타이틀롤 은교 역을 맡아 기대를 갖게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설을 안 읽었다면 그 기대치는 반반이다.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들여다본 박범신의 동명소설 '은교'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산 속 이적요의 집에서 시작되어 그 집에서 끝이 난다.

70대 시인인 이적요가 거울을 바라보며 성기를 노출한 채 자신의 늙고 추한 벌거벗은 몸을 관찰하는 오프닝과 수위가 높은 베드신이 화제를 모을 만큼 대담하지만 그러한 이 영화의 파격은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는 세 사람의 욕망을 부각시킨다.

“관능은 생로병사가 없는 모양이다.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젊은 날에 만났다면, 그리하여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터부도 없었다면 너를 만난 후, 나는 아마 시를 더 이상 쓰지 않았을 것이다. 네게 편지를 쓰면 되니까.“라는 소설 중 적요의 노트에 적힌 글처럼 적요는 자신의 집 앞 의자에 잠들어있는 여고생 은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 일을 돕는 은교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 이적요의 욕망을 일깨운다.

늙은 자신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적요의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사망한 노시인 이적요가 남겨놓은 노트와 서지우의 일기를 보며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변호사를 삭제하고 현재 진행형으로 세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한다.

그런 만큼 은교는 능동적이자 주체적인 인물로 바뀌었고 평생 시만 쓰며 생기 없던 노인의 삶을 살던 국민시인 적요의 심리 역시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절실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랑이 각인되지 않는다. 대신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적요의 말처럼 젊음에 대한 갈망과 감춰왔던 욕망을 드러내어 늙음에 대한 절망을 부각시킨다.

특히 스승 이적요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버지처럼 따르는 소설가이자 제자인 서지우는 소설 '심장'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재능에 대한 갈망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적요의 천재성에 깊은 절망을 느끼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서지우인지 이적요 껍데기인지“라는 그의 갈등과 은교에 대한 집착이 축소되면서 캐릭터가 단순해져 관객들의 공감과 연민을 끌어내지 못한다.

“70세 노인과 17세 여고생의 더러운 스캔들”이라는 서지우의 말처럼 이 영화가 원조교제를 다룬 에로틱한 성인물로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이적요가 은교와 관계를 맺는 것은 환상 일뿐, 적요에게 은교는 영원히 순결하고 고귀한 소녀이다. 그것은 그가 쓴 소설 '은교'에서 각인된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남자와 여자, 젊음과 늙음, 시와 소설, 욕망과 죽음 등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원초적인 갈망을 화두로 삼은 소설 중 은교와 두 남자의 관계에 집중하여 노시인의 이룰 수 없는 아픈 사랑이야기와 은교의 성장담으로 귀결시킨다.

자칫 치정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삼각구도를 극적 긴장감으로 대치하고 섬세한 심리묘사와 자연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정지우 감독 특유의 절제된 표현으로 상기시켜준다.

신예 김고은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열연을 보여줘 은교로서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8시간이 걸리는 노인 분장으로 연기 열정을 보여준 박해일은 섬세하게 표현된 검버섯과 주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연기에서 한계점을 드러낸다.

젊은 배우 박해일이라고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관객으로서의 편견이지만 70대 배우가 이적요를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만큼 절실함이랄까? 분장으로는 보여질 수 없는 중후함과 나이에서 오는 존재의 허무감 등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은교'는 문학과 영화의 만남으로서 또한 화제작으로서 볼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적요가 거실 유리창을 통해 은교를 그리는 장면과 라스트 신의 은교의 대사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내가 이렇게 예쁜 아이인 줄 몰랐어요.”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은교' 스틸컷.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