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최근 KB에서 은퇴를 선언한 정선민이 30일 오전 11시 서울 등촌동 WKBL 사옥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음은 은퇴사 전문이다.
소감은
많이 오셔서 감사 드린다.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게 또 다른 시작의 의미가 있다. 29년의 선수생활 동안 내 모든 걸 바쳤다. 다른 선수보다 코트에서 열정을 갖고 뛰었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선수생활을 잘 마쳐서 이런 자리에 온 것 같다. 잘할 수 있게 응원해주신 팬들, KB 관계자들, 후배들에게도 감사 드린다.
농구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멋 모르고 어릴 때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공을 잡았을 때 시작은 미미했다. 그리고 언론에 노출이 되고 정선민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고 1이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굉장한 기록들과 영광스러운 순간이 많아서 마지막은 성대했다고 할 수 있다.
기억나는 순간
우승 반지를 한 번 껴보기도 힘들다. 나는 9번이나 꼈으니 그 순간들이 큰 영광이었고 기쁘고 좋았다. 다만, KB로 이적한 뒤 우승을 선사하지 못한 게 아쉽다.
포스트 정선민이 있다면?
나라는 선수의 색깔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독특하게 가져가려고 했다. 팬들이나 기자들이나 농구인들이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바스켓 퀸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준 것도 한 역할, 포지션에 메여있지 않고 다방면에 도움이 될수 있게 노력했다고 본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 닮은 선수는 없었으면 좋겠다. 저만의 캐릭터가 영원히 기억됐으면 한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던데?
솔직히 나는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선수생활을 해왔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프로처럼 운영되기보다 얽메여서 생활을 해야 한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딜레마도 생기고 여자로서의 앞날도 있는데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게 비 시즌에는 진부하고 재미없고 힘들었다. 앞으로 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결혼을 위해 은퇴한 건 아니다. 남자 친구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주원과 상의 및 교감이 있었는지?
주원 언니는 은퇴 발표가 언론에 나왔을 때 연락을 받았다. 이 모든 사실을 부모님과 남자친구하고만 상의했었다. 주원 언니는 자세한 얘기는 안 했고 언제 은퇴를 할 것이냐는 건 신한은행에서 5년 지내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선수 생활을 잘 해왔고, 수고가 많았고, 잘 선택한 일이니까 앞으로 잘 됐으면 한다는 얘기를 해줬다.
농구인생을 점수로 표현하자면?
100점, 120점을 줘도 될 것 같다. 내가 잘해왔기 때문에 많은 기자 앞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당당하게 어디에서라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신세계 해체로 여자농구가 어수선한데?
사실 내가 은퇴를 하는 것도 신세계 여파로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신세계는 내가 창단 멤버였다. 첫해 준우승을 하고 우승을 4번 했다. 명문구단으로 빠르게 성장을 했다. 구단 자체에서 프로는 성적이 반영이 돼야 구단 운영이 된다는 현실이 해체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냐고 생각한다. 농구단은 이름 석자 달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느 팀 어느 선수인 걸 누구나 안다. 그 자체가 홍보다. 농구단이 성적이 나야지만 잘 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성적으로 따지자면 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해체를 해야 한다. KB는 아직 한번도 우승을 못했기 때문이다. 신세계 해체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조만간 인수 구단이 나온다는 걸 들었다. 신세계 후배들이 정말 다시 한번 코트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자 농구가 부흥할 수 있다고 본다.
선천적인 선수인가, 후천적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중3까지 언니들 쫓아다니며 할 줄 아는 게 없는, 농구 선수라는 것 자체도 학교 체육을 했다는 느낌뿐이었다. 중3때 훈련을 시작했는데 유독 고등학교 시절 감독님이 특별히 저를 같이 운동을 시켰었다. 그 기간이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갑자기 잘할 수 있었을까라는 건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때 대회에 나가서 평균 28점을 올렸다. 집에 기사가 있다. 선천적인 건 아니다. 잘하는 선수, 팀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뛰었다.
서장훈 선수에게도 한 마디
결정적으로 은퇴를 마음먹게 된 건 승균이의 영향을 받았다. 늘 성실한 선수였다. 승균이를 보면서 나이를 먹고도 참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걸 보고 당혹스러웠지만,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런 마인드를 어떻게 가졌을까 생각해봤다. 선수의 마무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고에 있는 선수가 언제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본인은 그렇지 않다. 이번에 은퇴를 하게 된 이유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은퇴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지인들과 만나서 얘기를 할 때 장훈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욕심을 안 부렸으면 좋겠다. 장훈이도 자신에게 냉정해지고 무엇이 팬들에게 가장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
이기적인 선수라는 견해는?
물어보고 싶다. 어떤 게 이기적인 것이었는지. 너무 잘해서 그런가? 늘 구설수에 올라있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사실처럼 된 게 더 많았다. 사실 어찌 보면 좋은 말도 많이 들은 반면 안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다. 기자들의 오보 기사도 수용하는 마인드도 생겼고, 좋은 기사에는 좋은 기사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마인드가 생겼다. 이기적인 건, 잘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닌가. 적당히 잘하면 정말 좋은 말만 해준다. 늘 좋은 얘기만 해준다. 그런데 예전엔 그런 선수가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선민이니까 그런 것 같다.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존재는
정말 많다. 그 분들의 좋은 점을 잘 받아들였다. 그 감독님의 좋은 점. 추구하고자 하는 농구를 잘 따랐다고 생각한다. 저를 가르쳐주신 모든 분은 스승님이고 은사님이다. 그 모든 분들의 영향이 있었다, 어떤 한 분 때문에 이까지 온 건 아니다. 슬럼프가 없다고 생각하던데 나름대로 슬럼프가 많았다. 코트에서 농구를 못해야 슬럼프가 아니라 시즌을 치르면서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가 있었다. 그걸 이겨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존재는 지도자, 프런트가 아니라 팀 동료였고 후배들이었다.
어떤 이미지로 남고 싶나
농구 코트에서 안 보이는 게 아쉽고, 공을 갖고 있을 때 가장 멋있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해설위원을 할 생각은 없는지?
나만의 컬러가 있고 나만의 농구를 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 3자 입장에서 분석하고 바라봐야 하는데 후배들도 전부 자기 은퇴하고 나서 하라고 하더라. 각 팀 후배들과 워낙 친분이 깊지만, 플레이에 대해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편이다. 후배들이 꺼리는 점도 있다. 하지만, 농구를 잘 해야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NBA 중계를 많이 보는 편이다. 하와이 여행가서도 매일 중계를 봤다. 해설을 하는 분위기를 보면 스튜디오, 경기장 이원중계를 하더라. 스튜디오에서는 현역 스타들이 같이 얘기를 하더라. 우리나라도 이런 게 정착이 됐으면 한다. 선수 입장과 예전 지도자들이 했던 것과는 다르지 않겠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볼 의향은 있다.
미국 생활에서 느낀 점은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많았다. 미국에 있는 6개월이라는 시간은 정말 중요한 내 농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는 트라이아웃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시애틀 스톰에 갔다. 아시아 최초라 현지에 대서특필 됐었다. WNBA, 가기 힘든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서는 무조건 경기에 뛰어야 잘했다고 봤다. 난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1라운드 픽이라 3년 계약이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3번이나 더 나갈 수 있었다. 미국에서 주어진 시간에 미국 선수들과 같이 얘기를 하고 훈련을 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됐다. 그 과정을 인정해줬으면 하는데, 당대 최고라는 정선민이 게임을 못 뛰는데 왜 갔냐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후배들도 기회가 되면, 무조건 가라고 얘기해줄 것이다. 그 자체가 공부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당시 신세계에서 FA 자격 얻어서 국민은행으로 가면서 계속 미국에 가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농구를 더 잘할 수 있게 됐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농구공에게 띄우는 편지
태어나서 40인생 절반을 농구공과 인연을 쌓았다. 너를 만난 게 감사하다. (눈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너로 인해서 내가 한국여자농구 최고의 자리에 갈 수 있어서 고맙다. 평생, 여기 있는 모든 분들과의 인연도 너 덕분이었다. 후손들에게 내가 낳은 자식들에게도 엄마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 평생 농구를 사랑할 것이고 너로 인해 행복했다.
팬들에게
그동안 한국농구가 붐을 일으킬 때부터 점보시리즈, 농구대잔치, 한국 여자농구에 전세계적으로 위상을 알렸던 시드니올림픽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사랑해주셨던 분들이 지금도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너무 감사 드린다. 이제 나는 코트에 없지만, 대를 이을 수 있는 후배들이 열심히 뛸 것이다. 한국여자농구를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란다. 한국농구 팬으로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제 농구 선수가 아닌, 다른 일로 여자농구를 위해 팬을 찾을 수도 있다. 기자 분들에게도 인사를 드릴 것이다. 다른 정선민의 모습을 기대해달라. 감사하다.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정신이 없다. 시즌 후 고민도 많이 했고, 주변 정리도 덜 됐다. KB 관계자들이 마지막까지 도움을 주셔서 KB 회장님, 행장님, 단장님께 감사하다. KB국민은행이 꼭 언젠가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이 될 수도 있다. 끝까지 선수들을 믿어주셨으면 한다. 끝까지 여자농구에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으면 하고 KB가 잘 될 수 있다면 물심양면 돕겠다. 당분간은 내가 뭘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금은 그냥 좀 쉬고 싶다. 여자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모님과 여행도 다니고 못했던 것도 하고 싶다. 계획표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은퇴를 선언한 정선민. 사진 = 한혁승 기자 hanph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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