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끝까지 이기적인 선수로 남고 싶어요…. (중략) 팬들에게 너무 감사드려요. 흑흑.”
지난달 30일 WKBL 선수로서는 최초로 은퇴 기자회견을 한 정선민이 눈물을 보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최고의 승부사도 여자였다. 은퇴 회견 내내 정선민은 “나는 색다른 농구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이기적인 선수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그만큼 잘해서 그런 것 아니었나? 나를 닮은 선수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캐릭터가 영원히 기억됐으면 좋겠다. 농구 코트에서 안 보이는 게 아쉽고, 공을 갖고 있을 때 가장 멋있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독한(?)말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사실 그런 말을 해도 아무도 뭐라고 못한다. 정선민은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농구를 잘했다. 주변의 질투와 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갈 길을 갔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남들보다 더 뛰며 한국인 최초로 WNBA 진출을 일궈냈다. 국가대표팀의 영광스러운 장면에도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렇게 농구 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한국 여자농구 발전에 그녀보다 큰 영향을 미쳤던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또한, 정선민은 몸담았던 팀에서는 엄한 선배였다.“후배들이 나를 어려워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후배들의 잘못된 플레이는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편이었고, 항상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갔다. 그 결과 현역 29년 내내 '바스켓 퀸'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기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라는 말은, 자신이 걸어온 29년 농구인생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이다. 정선민이 독한 말을 쏟아냈다고 해서 예의가 없거나 되바라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 은퇴회견 이후 점심식사자리에서도 기자들과 성심성의껏 환담을 주고 받은 그녀였다.
그런 정선민이 은퇴 회견 말미 울었다. 농구공에 보내는 영상 편지 순서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목에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의 여정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듯했다. 팬들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와 29년간 함께해온 농구공에 대한 시원섭섭한 감정이 표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선민은 의외의 말을 꺼냈다. “늘 구설수에 올라있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사실처럼 된 게 더 많았다. 사실 좋은 말도 많이 들었지만. 안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오해를 많이 받고 살았다는 뜻이다. 늘 완벽함을 추구했기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했기에 때로는 비인간적인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막상 태극마크를 달고 국위선양을 하자 팬들은 그녀를 한국 농구의 히로인으로 치켜세웠지만, 국내 여자프로농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늘, 1인자의 이미지를 지키는 모습에 시기와 오해가 많았다. 자신은 WNBA 진출자체가 영광이고 공부가 됐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제대로 거기서 뛰지 못했다고, 왜 갔냐고 성토했다. 오죽했으면 “오보에도 대처하는 힘이 생겼다”라고 말한 정선민. 알고 보면 그녀도 여자다. 코트에서는 굳건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했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나름대로는 슬럼프도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농구선수 정선민 이전에 여자 정선민은, 결코 순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이기적인 이미지를 자처하며 은퇴회견 현장을 사로잡은 정선민이었지만, 그녀도 알고 보면 사람이고 여자다. 정선민의 눈물은 언뜻 보면 아이러니했지만, 알고 보면 이유 있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정선민이기에, 최고의 위치에 올라갔기에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다.
[은퇴회견 도중 눈물을 흘린 정선민. 사진 = 한혁승 기자 hanph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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