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민성의 스타★필(feel)]
윤여정이 벗었다. 20대도, 30대도, 그렇다고 40대도, 50대도 아닌 65세 노배우가 과감한 베드신을 감행했다. 개봉 12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고,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수상이 불발된 ‘돈의 맛’의 속 배역 이야기다. 윤여정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가 안주인 백금옥 역을 맡아 서른 살 연하 김강우와 파격 정사신을 선보였다.
사실 윤여정의 관능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잘 알려진 깐깐하고 직설적인 성격과 함께 딱딱한 말투와 중저음의 목소리, 개성적인 외모까지 한국 여배우 중 전무후무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여배우가 중년기에 접어든 이후 자상한 어머니나 표독스런 시어머니 역할로 주저앉기 마련인데 윤여정의 행보는 남달랐다.
80~90년대에는 김수현 사단의 일원으로 ‘사랑과 야망’, ‘배반의 장미’, ‘모래성’, ‘작별’ 등에 등장하며 김수현 드라마 대사의 짧게 끊어지는 어법과 특유의 독설을 백분 소화하더니 어느새 호불호(好不好)가 팽팽한 인정옥, 노희경 작가의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내가 사는 이유’, ‘그들이 사는 세상’ 등에 출연하며 독특한 캐릭터를 잘도 연기했다.
스크린 행보 또한 심상치 않다.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 바람난 시어머니로 등장하더니 2009년 ‘여배우들’, 2010년 ‘하녀’, ‘하하하’, 2011년 ‘리스트’, ‘다른 나라에서 ‘돈의 맛’까지 문제적 작품에만 줄줄이 출연했다.
그러나 윤여정은 초창기부터 달랐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했지만 전형적인 미인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기를 못 펴다가, MBC 개국과 함께 방송사를 옮겨 1971년 일일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으로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해 한국 영화에서는 그 시절 드물게 ‘컬트영화’를 표방했던 김기영 감독의 ‘화녀’에 캐스팅됐고, 이 영화가 대히트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몇 년 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했지만, 1985년 미국 생활을 접고 여배우로 돌아왔다. 복귀작은 김수현 각본, 박철수 감독의 영화 ‘에미’로 애끓는 모정으로 광기의 살인마로 변신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윤여정은 독특한 존재감만큼이나 극단적인 인물형을 잘 소화한다. ‘돈의 맛’의 백금옥 또한 최상류 1% 재벌가의 여자로 돈으로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속물적인 인물이다. 최상위층의 돈과 섹스, 탐욕까지 전반을 다뤘다는 영화 주제를 대표하는 인물로 영화 전부터 화제가 됐던 김강우와의 농도 짙은 씬까지 윤여정이 아니면 감히 시도조차 못 할 과감한 연기를 자행했다. 윤여정도 처음 ‘돈의 맛’ 대본은 받았을 때 괘씸했지만, 관객들을 불쾌하게 만들 필수 씬이라는 임상수 감독 말에 동의하여 결국 승낙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몇 년 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배우는 배가 고플 때 진정한 연기가 나온다”는 독특한 철학을 펼친 윤여정은 2003년 ‘바람난 가족’을 출연한 이유를 집수리 비용이 필요했었다고 농반진반 말했지만, 그해 이 영화로 각종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2012년 프랑스 칸영화제에 임상수 감독의 두 영화 ‘돈의 맛’과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하여 레드카펫을 밟은 윤여정은 이미 40여년전인 1971년 영화 ‘화녀’로 스페인 시체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왜 ‘국민 어머니’가 안됐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친아들도 제대로 못 챙긴다고 재치있게 응수한 이 쿨한 성품의 소유자인 윤여정은 예술가로서의 허세나 포장 없는 집중력과 열정이 넘치는 최고의 40년차 직업 배우다. 임상수 감독의 말대로 ‘씬마다 자기 심장이고, 영혼이고 다 내주는 배우’인 윤여정. 그래서 40년 차 연기의 맛은 볼 때마다 놀랍다.
[윤여정.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영화 '돈의 맛' 스틸컷]
김민성 , 서울종합예술학교 이사장 www.sa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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