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한국생활 30년 산케이 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 인터뷰 (2)
최근 한국에 가장 유명한 일본인이라면, '4차원', '엽기녀'로 알려진 방송인 사유리(후지타 사유리. 33세)와, 한일관계의 첨예한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많은 한국인들로부터 극우성향 일본인으로 비판 받는,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겸 서울주재 특별기자인 구로다 가스히로 기자일 것이다.
제이피뉴스와 케이알뉴스에서는 현재 한국에 장기간 체제하면서, 한국인과 대중적인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한국거주 일본인'을 통해, 그들의 눈으로 본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어보기로 한다.
그 첫번째 인터뷰이는, 1971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1978년에 어학연수를 하고 그 이후 30년 넘게 한국특파원 자격으로 한국현대사를 몸소 체험해 온 구로다 가스히로(70세) 산케이 신문 특파원이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는 현재 산케이 신문의 고정 칼럼 '서울에서 여보세요'라는 타이틀로 한국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Q. 한국의 경제적 약진과 한류 등 일본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증가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일본의 존재감이 작아지고 있다고 말을 하는데 실제로는 어떨까요?
나는 한국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떨어지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내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고, 생활 감각으로부터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예를 들어 한국 언론에 의해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에서의 일본 비판을 포함, 일본에 관한 보도는 여전히 많이 있지요. 그리고 생활 정보로서의 일본보도는 이전보다 훨씬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일식 붐이라든지. 어쨌든 한국에서의 일본의 존재감은 여전히크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본 붐'이 반드시 일어난다고요.
Q. ‘새로운 일본 붐'이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한국인이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 올 때는 "역시 일본은 선진국이다"라는 의견이 매우 많습니다. 선진국의 지표는 몇 개인가 있어서 물질적인 면 이외에도 많이 있지요.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인은 일본에 가서 "일본인은 친절하다", "일본은 청결하다", "일본은 질서가 바르다", "일본은 안정되어 있다" 라고, "물건" 이외의 요소를 깨닫죠. 그리고 일본 사회가 가진 일종의 '인간적인 여유’ 등을 느껴서 한국에 귀국하게 됩니다.
이 ‘인간적인 여유’라고 하는 것은 대인 관계에 있어서 여유, 즉 '매너'이지만, 이 일본인의 '매너'가 한국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비춰집니다.
왜 이 '매너'가 한국 사람들에게 인상적인가 하면, 한국은 현재 경제적으로는 거의 선진국이에요. 자신들이 지금 선진국에 들어선 상황에서 "자, 진정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한다"라든지, "공공 장소에서 시끄럽게 하지 않고 질서를 바르게 지킨다"라든가, 식당 등에서 "청결 제일"이라든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일본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Q. 한국은 여전히 일본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까.
네 맞습니다. 최근 한국의 트렌드로 '고령화'라는 것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고령화의 모델로, 특히 비서구 사회의 모델로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선진국이지요. 일본은 이미 30년 이상의 고령화 사회에 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고령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연금, 간호를 비롯해, 행정이나 법률은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 고려해야하고, 사회 시스템이나 노인이 사용하기 편리한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소프트(soft)'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소프트'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만을 위한 상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용이 쉽거나 어렵거나 하는 실용적인 면 이외에도 색상이나 디자인, 형태도 노인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에서 '상품 제작'에 관해 한국에서도 연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고령화 사회는 '소프트'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소프트'한 사회 만들기라는 점에서 일본은 참고가 된다는 이야기네요.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사람들의 삶의 문제입니다.
고령자 사회에서는 인간이 퇴직한 뒤 사망까지의 20년이나 3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경제적 보장에 관한 의논이 중요하지만, 고령자들의 여가 문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사회도 이 문제에 드디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노인들이 보람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에 관해 한국에서도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 보란티어 활동에 참가하거나, 취미가 맞는 동지끼리 미니 동아리를 결성한다든가, 일본의 서점에 가면 이러한 '노후의 노하우'에 관한 책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고령자가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르는 상황이 증가하기 때문에 '얼마나 아름답게 눈을 감을까', '얼마나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까'라는 것에 대해 일본에서도 대단히 관심이 높습니다.
새로운 불교 붐이나. 혹은 신흥종교 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생과 사'의 문제가 보다 큰 관심과 화제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생과 사'의 문제는 인간에 있어 '철학적' 문제입니다. 고령자 사회의 '철학'에 관해 일본은 상당히 개발됐고 대단히 풍부한 지식도 쌓아 왔습니다.
출판물의 양이나 잡지의 특집 등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사회적 이슈가 될 문제들입니다. 한국은 이제까지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면 반드시 '일본은 어떠했었나'라는 식으로 일본의 예를 참고해왔습니다.
자신들보다 먼저 같은 사회적 문제를 경험한 나라를 참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서구사회를 제외한 나라 중 자신들보다 선진국 찾아보면 '일본' 이외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일본의 경험을 체크해 참고하고 있고 고령화 사회의 모델에 관해서도 한국은 틀림없이 일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일본 붐', 새롭게 '일본에서 배우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고 이미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어 일본은 불가결한 선례 모델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들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도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요(웃음).
'앞으로는 중국의 시대다'라고 흔히 말하지만, 저는 '좀 더 일본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 좋다'고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Q. 확실히 일본에서는 유언의 작성 방법 등 '슈카쓰(終活, 인생을 마무리 짓기 위한 활동)' 붐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까지 가족주의가 강했기 때문에 노후 문제에 관해서 진지하게 의논된 적이 없어요. 최근에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사례도 줄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롤 모델로 일본의 고령화 사회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Q. 그러면 필연적으로 한국에서도 새로운 '일본 붐', '일본을 통해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것이군요.
(구로다)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나는 중이죠.
Q. 2003년에 '겨울연가'가 NHK에서 방영된 이후 일본에서는 한류가 완전히 정착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같은 아시아에서도 중국이나 대만이 아닌 한국의 문화가 이렇게까지 일본에 받아들여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시 그것은 문화적·정신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문화가 일본에 들어가기 쉬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장벽이 없거든요.
이제까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입구' 단계에서 주저한 일본인이 많았습니다. '한국', '조선' 또는, '코리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과거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1988년 서울올림픽이 1차 한국 붐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Q. 역시 올림픽의 영향력은 컸었던 것 같군요
저에게는 지론이 있습니다. 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의식, 혐오감이라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요소가 어떻게 하면 개선될 수 있을까가 중요한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측의 편견을 버리려는 노력만으로는 개선될 확률은 대단히 낮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편견을 받고 있는 측이 열심히 존재감을 키워 무시할 수 없게 되면 편견은 약해지는 것이지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도 경제적 성장으로 세계적 존재감이 증대하는 과정에서 일본어나 일본문화를 배우거나 관심을 가지는 나라가 많아졌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이 이 정도로 큰 경제력을 가지는 나라가 됐기 때문에 일본인의 편견·차별의식·혐오감이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입구' 부근에서 한국을 주저하거나 거부하고 있던 감정이 서울올림픽 이후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에 들어왔고, 한번 접해보니 한국문화에 위화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위화감에 관해서입니다만, 큰 이그조티시즘(이국취미, 異国趣味)을 만족시키는 요소는 없지만, 보게 되면 뜻밖에 재미있고 친숙해지기 쉬운 요소가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는 볼 수 없는 스토리 전개나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크게 작용했지요. 이것들은 아그조티시즘(exoticism, 이국취미)적인 요소는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외국인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국문화'이기도 했습니다. 즉 '위화감 없는 이국취미', '친근감 있는 외국문화'라는 점이 일본인에게 새로운 외국 체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외국이란 이질적이며 위화감을 느끼는 존재인데, 한국은 외국문화임에도 이질감이 없었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인의 외국 체험에 플러스 알파가 됐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Q. 구로다 씨는 30년 이상 한국에 체재하고 계시는데, 3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해 반일감정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상당히 달라졌지요. 지금의 반일감정은 상당히 후퇴했습니다. 현상적으로는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히 약해졌고 일본인,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Q. 이제까지 구로다 씨는 역사적 문제나 영토문제에 관해 솔직한 자신의 의견을 한국에 발신해왔는데 협박이나 항의 등 신체적 위협을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이전에는 나의 의견에 대한 항의나 비판, 혹은 협박하거나 회사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별로 없네요.
현대는 인터넷 사회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불만이던가 비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전화나 팩스로 항의해오는 것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과 항의는 정치라던가 외교라던가 국가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30년간의 생활 체험으로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반일감정에 부딪힌 적은 거의 없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서울의 거리에서 일본어 간판이 세워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서서히 늘기 시작해 최근 급증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극적인 변화입니다.
1980년대에 한 일본 요리점이 가게 이름으로 '泉, 천'이라는 일본풍의 이름을 붙였더니 바로 신문 사회면에 실려 가게를 접는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실히 30년 동안 반일감정에 대한 질적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Q. 구로다 씨도 많은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만, 일제강점기를 실제로 살았던 한국인들은 일제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그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움'이 떠오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포함해 실제적, 감각적인 감정이며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일제강점기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면, 한국의 원칙과 도리적인 문제로 비판적인 의견을 말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실태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을 살펴보면 일본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소위 반일감정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의 30년간의 한국 경험에서 이끌어 낸 결론은 독립 후에 만들어진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반일감정을 가지거나 가질 수 밖에 없었나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통치가 끝났습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새로운 한국인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통치 시대가 얼마나 나쁜 시대였는지를 가르치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1945년 이후 한국 교육과 언론은 일본통치시대에 관해 '나쁜 시대'였다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체 이상으로 일본의 안 좋은 면이 강조되고 일본 비판이 전개된 결과, 반일감정이라는 것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부정'의 과정은 한국인에게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 자취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새로운 한국인이 되고 60년 이상이나 경과했기 때문에 이제는 교육적 관점에서의 반일은 졸업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한국 내부에서도 대립이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도 '남남갈등'이 있으며 해방 후의 역사나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해 좌우로 나뉘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사카 태생이라는 점 때문에 비판받고 있습니다. 이전보다는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친일을 운운하는 것'만으로 정치적인 효과를 주는 상황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올해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유력후보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는 일본군 출신이며 친일파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말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유교 사상이 기반인 사회이기 때문에 혈족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반복되고 있지만, 박근혜의 정적은 이번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조상이나 가계를 비판하고 상대를 멸시할 것입니다. 특히 언론은 박근혜에 대해 '친일파의 딸'이라고 비난하며 공격할 것입니다.
Q. 언론이 선동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네요.
한국의 언론은 일본과 관련된 보도에 자주 부채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좌파도 우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신문이기 때문에 당시 일본의 전쟁 체재에 협력한 과거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현재, 좌파세력은 조선일보 불매운동 등을 하고 있으며 친일 과거를 가진 미디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도 동아일보도 스스로 '민족을 대표하는 민족지'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거 친일을 부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친일 행위는 모두 강제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일문제에 관해서는 민감하게 보도해 민족주의적인 논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진보계 신분도 마찬가지로 친일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Q. 일본과 관계된 보도에 보수계도 진보계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까?
한국 언론은 원리주의적인 측면이 있고, 대단히 계몽적이며 주관적, 선동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선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경계를 기회 될 때마다 실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 미국과 관련된 보도와 비교하면 재미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반미'의 움직임이 일어나면, 반드시 '친미'의 움직임도 일어납니다. 재향군인회나 그리스도 교단 등의 보수파들은 친미집회를 열거나 합니다. 언론이나 지식인 사이에서 '반미'를 비판하는 논조도 적지 않지만, 친미적 캠페인도 많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반일' 일색으로 '친일'적 논조의 미디어는 전무하네요(웃음).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던가 일본을 옹호하는 미디어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중앙일보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의 입장이나 주장을 정확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작년 울릉도에 있는 독도 박물관을 견학할 목적으로 자민당 의원이 입국을 거부당했을 때에 중앙일보만이 입국거부를 비판했습니다.
온다고 한다면 입국시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해 주는 것은 어떠하냐는 사설을 통해 입국 허가를 주장했습니다. 뭐, 중앙일보는 독립 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신문이고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여유가 있기 때문에 포퓰리즘을 두려워 않고 이데올로기에 좌우되지 않은 경향이 비교적 강합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고민하고 있는 '친일' 과거로부터도 자유롭고요.
Q. 바다의 명칭 '동해'와 '일본해'로 한일이 다투고 있습니다만.
한국 측이 주장하는 명칭 병기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국제적으로도 큰 존재가 된 만큼 이를 어필하게 됐습니다.
바다의 이름을 두고 각지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중동에 페르시아만의 경우, 지금은 페르시아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페르시아는 이란의 별칭이기 때문에 이라크를 시작으로 한 주변국이 반대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걸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영불해협의 이름도 양국에서는 명칭이 다르고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둘러싸고 싸운 포클랜드 섬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입지가 높아진다면 한국 측이 주장하는 이름 병기로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본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그런 문제와 상관없습니다.
단, 이 일본해 명칭 문제에서 한국 측은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본이 붙인 명칭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정한 명칭입니다. 당시 이 해역에서 가장 강력했던 러시아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일본해로 결정한 것이지요. 일본이 조선을 통치한 결과, 일본해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이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이 동해 표기를 국제사회에 강조해 납득시킨다면, 병기하는 것도 장래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일본'이라는 이름이 이 해역의 명칭으로 들어가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이 해역의 명칭이 '러시아해'였다면 불만을 말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은 동중국해에 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고 있지요.(웃음)
Q. 한국의 인기 연예인 김구라가 위안부를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 언론의 표적이 됐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8.15독립기념일'특집에서 김구라와 대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역사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사와 외교, 한일문제의 현상, 한류 붐을 포함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뒤 그는 팬들 사이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구로다를 만났는데 묻고 싶은 말도 묻지 못하고 구로다에 일방적으로 이야기만을 듣고 왔다. 자신의 주장도 하지 않았다'라고 비판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그는 독설가로 유명해 거리낌 없이 말하는 캐릭터였기에 왜 자신이 가진 독설을 발휘하지 못했느냐는 비판을 받았는데 김구라의 변명이 재밌었습니다. '구로다 기자를 직접 만나 보니 대단히 부드럽고 친절한 인간이었고 자신보다 한참 연장자로 아버지같은 느낌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위안부 문제에서 독도 이야기까지 과거의 경위부터 전부 설명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당시 일본은 전쟁 시대로 한국도 일본령이었습니다. 한국의 여러분도 당시는 가난한 시대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대 배경은 가난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일 정부 간에서도 정치적 산물로 '강제성'이라는 것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단, 그 강제성에 관해서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국민에게 '강제'를 요구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고, 넓은 의미에서는 국민 전체가 일본령이 됐던 한국을 포함해 국가의 강제하에 있었던 일이라고 당시 김구라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김구라가 최근 위안부에 관한 발언에서 한국 언론에 표적이 되고 있는데, 5년 전 저와의 대담도 최근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는 듯합니다. 무언가 잘못됐지요.
내가 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보내고 싶은 말은 '감사'와 '위로'입니다. 나는 1999년에 출간한 '한국인의 역사관'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만, 당시 이 책을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비판했지요. 그리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관계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데리고 몇 번인가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위안부는 일본군에 대한 협력자'라는 나의 인식이 '괘씸하다'며 항의하러요. 한국이 주장하는 '강제됐다'라는 인식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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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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