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시네마]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 수많은 단편 소설과 '갈까마귀(The Raven)', '애너벨 리' 등의 시로 익히 알려진 에드가 앨런 포(1809-1849)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이다.
그는 1809년,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세 살이 돼 고아가 될 때까지 초라한 분장실에서 자라났다. 아버지가 가출 해버리고 어머니마저 사망하여 숙부인 앨런 가에 입양된 포는 1826년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주벽과 도박에 빠져 양부모의 절연으로 결국 입학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18세 때 첫 시집 '티무르(1827년)'를 익명으로 출판한 이후, 제2시집 '알 아라프, 티무르(1829년)'와 제3시집인 '포 시집(1832년)'을 출판하지만 인정받지 못한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33년 그는 단편소설 '병속의 수기'로 상을 받고 1835년부터 37년까지 '남부문학통신'지의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지만 1836년이 바로 미국의 공황시기여서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했다.
"예술행위의 목적은 도덕성이나 교훈을 주는 것보다는 미의 창조에 있다"라는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들은 당시 미국 문학을 주도했던 청교도적인 사상과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사후 30년 동안 미국이 낳은 이단아이며 보헤미안으로서 영어권 문학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고 1875년에야 겨우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의 천재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포의 글 속에 있었다"라고 극찬을 한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의 번역에 의해서였고 에드가 앨런 포는 추리 소설의 개척자로서 낭만주의 또는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현대 문학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소설처럼 기괴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다. 1847년 가난과 병으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1849년 10월, 무절제한 생활로 볼티모어의 길거리에서 쓰러져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궁핍, 음주, 광기, 마약, 우울, 신경쇠약으로 점철된 힘겹고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데 세상을 떠나기 직전 실제로 그가 5일 정도 실종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는 아내 버지니아가 죽은 지 2년 뒤인 1849년, 술과 약을 끊고 새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새로운 약혼녀 새라 엘머러 로이스터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1849년 9월 28일 아침, 그는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 빈사 상태로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췄는데 그의 행적은 완전히 미궁 속에 있고 포가 다시 발견된 것은 10월 3일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였다. 그는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고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사흘 반나절 고통을 겪다가 10월 7일 일요일 새벽 5시, "신이여, 내 불쌍한 영혼을 구하소서"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과 루머가 떠돌 뿐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영화 '더 레이븐'은 미스터리했던 그의 죽음 직전의 5일이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그의 소설을 모방하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여 뜻하지 않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의 스릴러로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픽션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영화적 상상력을 부각시켜준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사실(fact)과 상상(fiction)이 절묘히 어우러진 정통 팩션 스릴러로 에드가 앨런 포가 등장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되는 죽기 직전의 모습은 실제 그때의 상황을 재현한 것이며 그 장면을 제외한 모든 극의 구성은 픽션이라 볼 수 있다.
볼티모어의 한 빈민가에서 기괴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베테랑 수사관 에멧 필즈(루크 에반스 분)는 사건의 현장을 본 순간 일련의 살인사건들이 에드가 앨런 포(존 쿠삭 분)의 소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1849년 10월 7일, 볼티모어의 한 공원에서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 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 '더 레이븐'은 위대한 작가인 에드가 앨런 포의 숨겨진 삶과 내면보다는 그의 소설 6편에 들어있는 살인사건을 영화의 모티브로 차용하여 그 소설들을 살인도구로 이용하는 연쇄살인범과 에드가 앨런 포의 숨막히는 게임에 집중한다.
그런 만큼 에드가 앨런 포의 전기영화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에서 에드가 앨런 포는 자신의 소설 속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를 잡기 위해 자기 작품을 분석하고, 스스로 살인마를 위한 소설을 쓰고 쫓을 뿐이다. 이 영화에 인용된 그의 소설은 '모르그가의 살인'과 '함정과 진자', '붉은 죽음의 가면', '마리로제의 수수께끼', '아몬틸라도 술통', '고자질하는 심장' 6편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시리즈 조감독을 거쳐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닌자 어쌔신'을 통해 세련된 감각의 영상을 선보인 제임스 맥티그 감독은 묵직한 정통 스릴러적 요소에 액션을 통한 화려한 추격을 가미시켜 강렬한 흡인력으로 오락적 요소를 부각시킨다.
특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재현하는 셋트와 음산한 분위기를 각인시켜주는 미장센은 자칫 단순해 질 수 있는 이 영화의 구성을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살인범과 이를 쫓는 자들의 대결을 그린 스릴러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다소 실망스럽다.
제임스 맥티그 감독은 항상 불안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던 에드가 앨런 포의 시점을 부각시키고 에드가 앨런 포 역의 존 쿠삭 역시 표정만으로도 불운했던 포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지만 오락영화로 머물러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브이 포 벤데타'를 연상시키는 비주얼과 분위기는 강렬한 흡인력으로 긴장감을 지속시키고 잔혹 수위도 '닌자 어쌔신'을 넘나들어 기대감을 증폭시켜주지만 무엇보다 결말이 안일하게 느껴지는 것이 흠이다.
하지만 팩션 스릴러로서 이 영화를 통해 에드가 앨런 포의 6개의 소설에 대한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브이 포 벤데타'에 대한 기대감보다 '닌자 어쌔신'의 오락성에 만족한다면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두근두근 스릴러로 손색은 없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더 레이븐' 스틸컷. 사진=(주) 누리픽쳐스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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