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죄송합니다.”
SK 이만수 감독이 3일 부산 롯데전을 앞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에이스 김광현이 순위 다툼이 한창인 가운데 선발 로테이션에서 1~2차례 빠지게 돼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김광현은 지난 1일 인천 LG전서 2회를 마치고 덕아웃에서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이 감독은 그 원인을 지난달 29일 인천 LG전이 우천 취소된 뒤 우천세리모니를 한 것에서 찾았다.
이 감독은 “스튜피드(stupid)다. 나는 광현이가 그 당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러 나간 줄 몰랐고 다음날 인터넷을 보고 알았다. 당장 불러서 혼냈다. 본인도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반성하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SBS ESPN 양준혁 해설위원도 “어지간하면 투수들, 특히 에이스는 절대로 안 한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 왜 투수들은 우천세리모니를 안 할까
우천 세리모니는 비로 경기가 취소된 뒤 경기장에 남아 있는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다. 보통 저연차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서 스파이크를 벗고 방수포가 깔린 루를 차례로 돈 뒤 홈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한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타자들의 타격이나 주루 폼, 습관을 따라하면서 팬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양 위원의 지적대로 투수들은 어지간하면 우천 세리모니에 참가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수들은 평상시에 슬라이딩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루플레이가 필수인 야수들은 매일 슬라이딩 훈련을 하지만 투수들은 그럴 일이 없다. 중, 고교 시절에 타자를 겸업하면서 슬라이딩을 했어도, 프로 입단 이후에는 투수 훈련만 받기 때문에 자연히 슬라이딩에 대한 훈련이 덜 됐고, 슬라이딩에 필요한 근육도 발달돼있지 않다. 이 감독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걸 왜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 감독은 일화 하나를 털어놨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 시절 당시 에이스 마크 벌리와 함께 우천 세리모니를 했는데, 단장에게 불려가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아 유 크레이지? 스튜피드라고 난리 났다. 마크 벌리가 몸값이 얼마인데, 부상을 입었다간 팀도 팀이고 자신의 목도 날아간다며 크게 혼이 났다”고 말했다.
▲ 우천 세리모니의 특수성, 야수들도 되도록 안 해야
나아가 이 감독은 우천 세리모니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방수포 위에서 하는 거잖아. 그라운드보다 더 미끄러운데 잘못하다가 자빠지면 큰일 난다.” 사실이다. 그라운드는 미끄럽지 않아 슬라이딩을 할 경우 자연스럽게 몸을 보호 할 수 있지만, 방수포는 미끄럽기 때문에 슬라이딩을 하기 직전 중심을 잃을 수 있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 넘어지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비가 내리고 있는 와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감독은 이런 점을 들어 “야수들도 우천세리모니를 되도록 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광현이는 프로 정신이 부족한 짓을 했다. 일반 팬이 먼저 한걸 보고 따라서 한 것 같은데 그게 말이 되나”라고 혀를 끌끌 찼다.
이 감독은 또 우천시가 아닌 평상시 경기 도중에도 성급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부상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갑자기 엎어지면 어깨에 엄청나게 무리가 간다. 경기 중에도 다리부터 들어가는 훅 슬라이딩을 해야한다. 긴박한 도루가 아니라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하면 안 된다. 특히 홈에서는 더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팬 서비스를 프로 선수의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이 감독조차 우천세리모니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게 이채롭다. 더구나 에이스 김광현이 그렇게 빠지게 된 걸 보니 속이 타는 이만수 감독이다.
[우천세리모니를 하다 어깨에 부상을 입은 김광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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