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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미스코리아,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의 가야금 전공자라는 두 가지 키워드만으로도 이하늬는 '엄친딸'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스스로는 그 수식어에 난색을 표한다.
4일 오후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하늬는 "겉으로 보이는 레주메만 본다면 그럴 지 모르죠. 하지만 전 순탄하게 살아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국악을 하는 사람으로 가장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그 사이의 수많은 일들은 잘 모르시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전 오그라들어요. 중학교 입시도 힘들었고 아버지가 그 시절부터 '떨어지면 공장이나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이지 치열하게 하루 12시간씩 가야금 연습을 했었어요. 어릴 때는 방황도 많이 했죠. 특히 중학교 때는 춤 추겠다고 질풍노도의 시기도 겪었으니. 그 시절에는 선생님한테도 많이 맞았어요. 다들 모범생이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에요. 뺨도 맞아봤는데요."
의외의 과거사를 털어놓은 이하늬는 "어머니(문재숙 이화여대 교수)나 언니를 보면서 중압감도 엄청났어요. 내가 잘 못하면 나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먹칠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방황도 많이 했고 그러나 또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학교는 가야겠다 싶어 독하게 공부했죠"라며 대입 입시를 앞두고 오늘의 '엄친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방황을 거쳐 국악을 전공으로 택한 이하늬는 어째서 미스코리아를 하게 됐을까?
"어머니의 권유를 받고 사실 처음에는 미스코리아 완강히 안 나가겠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강하게 설득하셨죠. 제가 그 시절 대학원을 다니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했었거든요. 아침에는 아무도 없는 연습실로 나가 하루 8~9시간씩 연습을 하고 수업듣고는 YG엔터테인먼트로(이하늬는 YG의 연습생 출신이다) 가서 춤추고 노래했었죠. 어머니가 '너는 어차피 평범하게 살 것 같지 않다. 마치 담장으로 뻗은 가지 같은 느낌이다. 네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너 스스로에게도 너를 테스트 하는 시기를 가져보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볼 지에 대해 테스트 해봐라. 젊은 날에 이런 것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설득당했죠."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던 것일까. 이하늬는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됐으며 이를 계기로 인지도도 높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이하늬. '연가시'와 '나는 왕이로소이다' 두 편의 영화 개봉을 앞둔 그녀는 "20대는 정말이지 파란만장하게 보낸 것 같아요. 그럴려고 노력도 했었고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찾으려 노력했던 그 시기를 지나 돌이켜보면 전 제가 잘 하는 것, 어울리는 것, 무엇을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는 찾은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거든요. 이제 30대에는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저벅저벅 나아가는 시기가 돼야겠죠. 많이 벌려놓은 것들을 깊이있게 하는 작업을 조급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할거에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똑부러진 그녀는 역시 '엄친딸'이라는 말에 가장 적합하다.
[이하늬. 사진=한혁승 기자hanfoto@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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